원래 서평을 비롯한 진지한 글쓰기를 하고 싶어 만들었던 공간입니다만, 갈수록 본 목적에서 거리가 멀어져 가는 듯 합니다. 이 때문에 블로그를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원래 목적에 맞는 공간으로 되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폐쇄보다야 그게 낫겠지요.

이에 지금까지 올렸던 신변 잡기적인 게시물은 모두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앞으로도 서평이나 작가 정보 같은 글만 간간히 올라오겠지요.

저와 개인적인 접촉을 원하시는 분은 다음의 매체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MSN(gkman1@hotmail.com)
  • 네이트온(gkman1@nate.com)
  • 미투데이(링크)
  • 스트림(링크)
  • 트위터(링크)

물론 이렇게 연락처를 써놓는다 해도 지금까지와 전혀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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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사담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0) 2010/08/18
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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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세계문학총서

한국문학계의 거물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입니다.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자기네 출판사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총서는 본래 문지가 아니라, 교보그룹 창업주인 대산 신용호 회장이 세운 대산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전집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일개 출판사가 아니라 교보생명이라는 거대 기업을 등에 업은 문화 재단에서 공익 사업으로 내는 문학 총서인 셈이죠. 실제로 출판계에서 번역자에 대한 대우를 가장 후하게 쳐주는 기획물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이에 견줄만한 기획물이라면 국가기관인 학진에서 지원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 고전명저번역총서》정도?

기획 자체도 공모 형식으로 한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죠. 즉 번역자들이 이러이러한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고 응모를 해오면 심사를 해서 그 중에 선정을 해 번역을 의뢰합니다. 이렇다 보니 번역에 들어가는 공 자체도 타 출판사의 판본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인 것이죠. 이를테면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경우 이 총서 외에도 열린책들의 홍대화역이나 문예출판사의 박형규 역이 존재합니다만, 작가인 미하일 불가코프의 작품을 전공한 사람이 맡은 판본은 이 총서의 김혜란 역이 유일합니다. 주석을 비롯한 곁다리 자료들만 봐도 번역에 들어간 공력이 엄청나게 차이난다는걸 알 수 있죠.

그렇다면 문제가 뭔고 하니... 이 전집의 기본 명작이 '문학사적 가치가 있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 명작'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지요. 물론 의의가 깊은 일이기야 한데, 덕분에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워낙 생소한 작품이 많습니다. 그만큼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기도 어렵고요. 이 총서의 책들 대부분이 워낙에 안팔리는 것도 아마 그런 사정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문학에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언젠가는 이 총서를 한번쯤 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에... 초기작에서는 이 총서가 흰색 표지에 제목만 덜렁 달아놓은, 무척 촌스러운 장정을 했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 나온 책들은 무척 깔끔하고 보기 좋은 장정으로 바뀌었더군요.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얼마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전집인데... 사실 저는 접해본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유명 소설가 김영하에게 번역을 의뢰하는 등 이리저리 애를 쓰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 같은 출판사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소설가 김연수에게 번역하게 했던게 생각나서 좀 재밌었습니다 - 좀 더 두고 볼 일이지요. 『파우스트』처럼 예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좀 더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나왔던 책을 전집에 편입시킨 경우도 있던데, 기왕 나왔던 책은 어떻게 될런지 좀 걱정되는게 사실입니다.


민음 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의 베스트셀러. 가장 널리 팔리는 전집이죠. 도서 관련 커뮤니티에서 번역본에 관련한 질문만 들어오면 무조건적으로 이 전집을 추천하는 광경도 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전집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워낙 많이 팔리는 전집이다 보니 부정적인 반응도 그만큼이나 많이 나오는 거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이른바 '세계명작' 즉 너무 잘 알려지다 못해 뻔하기까지 한 작품이 워낙 많다는 것이죠. 무려 200권이나 넘어가는 문학전집이고 보니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가끔은 불만스러울 때도 있지요.

게다가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번역... 물론 문학전집의 특성상 좋은 번역도 있고 나쁜 번역도 있기 마련입니다만 민음사의 경우는 사실 그리 곱게 보이지 않더군요. 업계 매출 1,2위를 다투는 대형 출판사이면서도 역자에 대한 대우가 워낙 박하기로 유명해서, 마냥 번역자만 욕하기도 뭐하다는 게 가장 크지요. 왕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그대로 가져와 출간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특히 『중국신화전설』 같은 경우는 《대우학술총서》로 나왔던 책을 다시 내면서 주석과 본문 일부를 뚝 떼어먹었기로 유명합니다. 이런 판단을 설마 번역자 혼자서 했을리는 없죠. 소위 '보급판'이라는 미명 아래 출판사 측에서 저지른 짓이라고 봐야 할 텐데, 그런 황당한 사건을 목도하고 나면 사실 이 전집이 그렇게 곱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뭐, 그렇다곤 해도 이 전집만의 장점도 있습니다. 일단 200권을 넘어가는 방대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전집이다 보니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 좋고, 뭣보다 가격이 엄청나게 싸거든요. 정가조차 7,000원밖에 안하는 책도 상당히 많습니다.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하면 한 권에 5,000원이 안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이래저래 주머니 사정 어려운 독자들에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이라 할까요.


 《범우 비평판 세계 문학선

왕년에 많이들 봤던 세계문학전집. '훌륭한 작품을 양질의 번역에 싼 값으로 공급한다'라는 컨셉을 내세웠던 전집이고, 딴에는 《Mr.Know 세계문학》의 선배격(?)인 전집이기도 합니다. 이 전집으로 나왔던 번역서 중 김붕구의 『적과 흑』 번역을 비평가 김현이 제법 호평했던게 기억에 남는군요. 이 외에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으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했다는 전설로 유명한 영문학자 김병철 선생도 이 출판사의 매니아로 유명했고... 다만 이 전집 자체는 워낙 구닥다리가 되어놔서 지금에 와서는 별로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취향 자체가 좀 옛스러운(?) 분들이 주로 찾으시죠. 게다가 『샤를마뉴 황제의 전설』처럼 여전히 이 전집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도 여럿 되니 아주 무시해버리기엔 아까운 전집입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Mr.Know 세계문학

얼마 전에 제가 이 전집에 대한 정보를 올렸었는데... 《Mr.Know 세계문학》이 《열린책들 세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왔습니다. 글자 크기나 행간 등은 그대로고 표지와 가격만 바뀌었다더군요. 물론 전집의 라인업도 다소 달라지긴 했습니다. 원래 전집으로 내질 않았던 『미사고의 숲』같은 소설이 새로 전집에 포함되었고, 열린책들의 베스트셀러라 할 도끼 소설들도 여럿 포함되었죠. 아예 새로 번역된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만 이거야 두고 볼 일이죠. 다만... 기존에 단권이나 두권 분량으로 냈던 책을 두 권 내지 세 권으로 추가 분권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가뜩이나 양장으로 바뀌면서 오른 책값이 훨씬 더 올랐습니다. 열린책들이 정말로 저가정책을 포기했구나 싶어서 영 씁쓸했더랬죠.

뭐 늦은 말이긴 합니다만 《Mr.Know 세계문학》은 흔해빠진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도 자기 색을 갖춘, 상당히 괜찮은 문학전집이었더랬죠. 출판사 자체가 초기부터 '관련 언어 전공자에 의한 완역본'을 컨셉으로 밀고 다녔던 곳이기도 하고, 전집의 라인업 또한 기존의 전집들에 비하면 상당히 참신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장르문학 팬덤에게는 SF나 판타지 장르에 속하는 작품들이 '세계문학전집'의 작품으로 소개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 깊은 일이었죠. 이 외에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작품을 소개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해서, '고전'에 질린 독자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썩 괜찮은 전집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번역서 특유의 희안망측한 고유명사 표기(특히 러시아문학)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열린책들이 워낙에 판본 장난을 잘 쳐서 그렇지 전집 자체는 제법 쓸만하다는 이야기지요.


 《월드북

동서문화사에서 내는 책인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런 책이 여전히 시장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 아닐까 합니다. 물론 동서문화사가 한창 활약하던 시절(그러니까 사상계사의 뒤를 이어 동인문학상을 인수하던 시절)에는 이 출판사에서 내는 중역본들도 나름의 의의가 있었습니다. 워낙 책이 부족하던 시절이니까요. 이 출판사에서 냈던 《ACE88》등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그런 사정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중역본이니 완역본이니 하는걸 따지기 이전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지금이야 굳이 번역도 이상한 이 출판사의 책을 사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보다 훌륭한 번역서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아무리 싸다곤 해도 이런 책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출판사 자체도 좀 이상한 소문이 많이 들리던 곳이죠. 90년대에 백과사전을 출간하면서 직원들을 사정없이 착취했다는 둥... 이 출판사 사장이 보여온 정치적 행보도 영 못미더운게 사실입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

출판사의 나이로 따지면 범우사(1966~)보다도 훨씬 오래된 을유문화사(1945~)의 전집. 얼핏 기억하기로 이 전집 이전에도 을유문화사에서 낸 전집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질 않는군요. 여튼 지금 소개하는 전집 자체는 2008년에 출간되기 시작한 전집입니다. 사실 저로서도 이 문서 준비하면서 새삼스럽게 기억했다 뿐 직접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는 전집인데... 찾아보니 출판사에서 50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전집이라는군요. 그만큼 출판사에서도 나름 정성을 기울였던 모양인데, 물론 저는 직접 읽어본 바가 없으니 평가야 생략. 다만 최근에 크래티앵 드 트루아의 『그라알 이야기』를 내놓은 건 굉장히 이채롭더군요. 번역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책인데 나와줘서 굉장히 기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참 묘했더랬습니다. 좌우간 귀추를 주목해볼만한 전집이라는 점은 확실하지요.


 《펭귄 클래식

세계적으로 유명한 '펭귄 클래식' 전집의 한국어판이긴 한데... 그 모양새가 좀 이상합니다. 본래 펭귄 클래식은 저작권이 풀린 고전들을 - 모양새를 포기하는 대신 - 염가에 판매한다는 기획을 내세웠던 전집이지요. 책을 서점이 아닌 슈퍼마켓에서 판다는 판매 전략을 최초로 도입했던 전집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국어판은 요게 '값이 싼 것도 아니오 장정이 고급스러운 것도 아닌' 요상한 꼴이 되었습니다. 펭귄 클래식 답지 않은 고급화 전략을 꾀하면서도 그게 좀 어설프게 되었달까요. 저도 읽어본 게 얼마 없어서 판단은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겉모양새만 보면 어째 찜찜... 한 것도 사실입니다.
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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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2009년 10월 근황'에 넣으려다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밖에 뺀 이야기-.

홍대화의 열린책들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끼워넣었다. 번역서 본문을 비교하는 대목부터 읽으면 된다.




내가 가장 먼저 접한 『거장과 마르가리타』 판본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박형규 씨의 번역본이었다. 이 판본에 대해서는 읽기 전부터도 여러 곳에서 많이 들었다. 역자 박형규 씨는 과거 1982년부터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번역하여 출간했던 사람이다 운운. 이 번역본이 여러 출판사를 거쳐 1992년에 삼성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을 마지막으로 거의 14년간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새 번역본이 없다가 2005년에 러시아에서 나온 드라마가 그야말로 대박을 치는 바람에 이 드라마가 한국에 수입되는 시점에 즈음하여 문예출판사에서 재출간되게 되었다 운운. 거개는 벌거지님을 통해 접했던 정보들이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정보 중에는 이 번역본이 사실은 저작권 관련 사항조차 불명확한 일어 중역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이야기 관련해서는 내 기억이 불확실하니 넘기도록 하고... 중역본들이 대개 그렇듯 매끄럽게 읽히는데 치중한 번역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이 판본으로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게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불가코프 전공자가 작업한 다른 번역본들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확실히 그렇게 충실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번역본이다. 2권 말미에 들어간 벌거지님의 서평은 꽤 훌륭했지만 번역에 들어간 정성 자체가 이리 부실해서야.

그 뒤에 접한 판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나온 김혜란의 번역본, 그리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홍대화의 번역본. 뒤의 두 판본은 이전에 나온 문예출판사 판에 비하면 정말 정성스럽게 제작된 판본이라 그저 감탄하면서 볼 뿐이다. 요 며칠간 나도 해외의 불가코프 팬 사이트를 뒤지며 나름 공부를 하긴 했다지만 이 두 사람의 번역서에 달린 주석들은 상당 부분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것도 작품 이해에는 거의 필수적인 주석들이어서, 문예출판사 판만 봤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이를테면 2장에서 예슈아 하-노츠리가 유다 이스카리옷과의 인연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박형규 역(45~46p, 1권)  김혜란 역(44~45p)  홍대화(49~50p, 上권)
  "그럼," 총독이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가리옷 사람 유다를 아느냐? 그와 얘기한 적이 있다면, 케사르에 대하여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있습니다." 죄수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저께 저녁 저는 성전 근처 가리옷 마을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는 선량한 사람인가?" 빌라도가 묘한 눈빛을 띄고 물었다.
 "매우 선량하며,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죄수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저의 사상에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으며 즐거이 저를 환영했습니다."
 "촛불까지 켜고……." 빌라도가 이를 악문 채로 죄수에게 말했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예." 예슈아는 총독이 그토록 소상한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데 놀라면서 말했다." 그는 저에게 정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단히 관심이 많더군요."
  "그래서 너는 무슨 말을 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대답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목소리에는 체념한 듯한 기분이 나타났다. 
  "그럼," 그가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너는 키리아트에서 온 유다라는 자를 알고 있느냐, 그리고 그자에게, 그러니까 만일 말을 했다면, 카이사르에 대한 무슨 말인가를 했느냐?"
 "그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엊그제 저녁 성전 옆에서 키리아트 시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도시 남쪽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저를 초대하여 대접해주었습니다……."
 "그자도 선량한 사람이었겠지?"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에 불꽃이 타오르듯이  이글거렸다.
 "무척 선량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죄수가 대답했다. "그는 제 생각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고, 매우 정성스럽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작은 불꽃들도 켜두었고……." 빌라도는 거의 입을 벌리지 않고 죄수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두 눈이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렇습니다." 예슈아는 총독이 그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는 것에 다소 놀라며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국가 권력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텐가?" 빌라도의 어조에는 이미 절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대답해라.」 그는 말했다. 「너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38라는 자를 아느냐? 말한 적이 있다면, 네가 카이사르에 대해 한 말은 참으로 어떠한 것이냐?」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꺼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저께 저녁 나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라고 하는 한 젊은이를 성전 옆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도시 아래쪽에 있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했지요…….」
 「그는 선한 사람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악마 같은 불꽃이 튀었다.
 「아주 선량하고 상냥한 사람이지요.」 죄수는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나의 생각에 큰 관심을 보이고, 나를 아주 정성스럽게 맞이했습니다…….」
 「등불을 밝혔겠지…….」39 빌라도는 이를 악물고 죄수의 톤에 맞추어 말했다. 이때 그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렇습니다.」 총독이 그것을 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면서 예슈아가 말을 이었다. 「나에게 국가 권력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말해 달라고 했어요 그는 그 문제에 지극한 관심을 보였지요.」
 「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혹은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말투에는 기대감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촛불', 혹은 '불꽃'에 대한 묘사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다소 생뚱맞게 삽입된 부분이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총독이 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서 불을 켰다는 사실을 짐작한단 말인가? 별다른 주석을 제시하지 않는 박형규 역에서는 이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만, 김혜란 역과 홍대화 역에서는 미주와 각주를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유대의 율법은 누군가 종교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유혹'의 죄로 고소된 경우, 두 증인으로 하여금 벽 뒤에서 숨어 지켜보게 하고, 그 옆방에 피고인을 들어가게 하여, 피고인이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증인들이 그의 말을 듣게 했다. 그리고 이 때 피고인 곁에는 촛불 두 개를 켜두어, 증인들이 피고인의 얼굴을 분명히 알아보도록 했다. (김혜란, 619p)

로마법에 따르면 숨겨 놓은 증인들이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등불을 밝히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홍대화, 상권 50p)

유다가 예수를 초대하면서 촛불을 켰다는 사실은 결국 이 때 이미 유다가 예슈아 하-노츠리(곧 예수)를 팔아넘기고자 했다는 뜻이고, 본디오 빌라도가 이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는 건 그러한 사실을 본디오 빌라도가 알아차렸다는 것을 뜻한다. 주석이 없는 다른 판본에서는, 본인이 이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지 않은 이상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대목이다.

기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저자 자신이 살았던 당대, 스탈린 정권 치하의 러시아에 대한 풍자 소설일 뿐만 아니라 성경, 중세 파우스트 전설 등 숱한 배경지식들이 녹아난 소설이기도 하다. 결국 작품들이 품고 있는 맥락들을 집어내지 못한다면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충실한 주석이 곁들여진 번역본들의 가치가 단연 높을 수밖에 없다.

남은 문제라면 기왕에 나온 두 주석본 중 어떤 책의 주석이 더 탁월하느냐의 여부가 되겠는데... 사실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인용한 구절에서는 김혜란 역의 주석이 훨씬 상세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홍대화 역에서 훨씬 상세하거나, 아예 홍대화 역에만 실린 주석도 적지 않다. 정말 재미있는 건, 두 번역본 모두 같은 원서와 같은 주석서를 참고하여 주석을 달았다는 점이다. (1990년에 출간된 불가코프 전집과 2007년에 출간된 벨로브롭체바의 주석서) 일단 쉽게 확인 가능한 차이라면 문학과지성사판은 주석을 미주로 달아 죄다 책 뒤로 밀어냈고, 열린책들판은 각주로 달아 그 때 그 때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는 점 정도.

물론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러시아문학 특유의 독자적인(?) 인명 표기는 좀 더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고...

결국 문예출판사의 번역본을 까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 번역본도 나름 번역사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일단 2006년에 이 번역본이 재간되고 나서 최근 들어 갑자기 문학과지성사판이니 열린책들판이니 하는게 번역되기 시작했고, 모 출판사에도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는 하니 말이다. 번역 자체의 수준이야 어떻든 불가코프 번역 붐(?)을 일으킨 공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할까? 그렇다곤 해도 문예출판사의 번역본만 보겠다고 하면 썩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또,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모 출판사에도 2007년에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 들었다. 언제 나올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번역자 분이 소설가로서는 내 나름 주목하는 분이기도 해서 제법 궁금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원고가 2007년에 넘어갔다 하니 문학과지성사나 열린책들에서 나온 원고보다는 주석이 상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뭐 모 출판사에서 현직 교수인 이상섭 씨가 번역한 『아서 왕의 죽음』조차 2005년에 원고를 받아놓고서는 올해 말에 낸다니 만다니 하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과연 언제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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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판타지 팬덤 생활에 대한 회고」라는 글을 썼었다. 따로 공개했던 적은 없고, 그냥 나 혼자 보기 위해 썼던 글이다. 제목이야 판타지 팬덤 운운이지만 실은 내가 이제껏 몸담아왔던 인터넷 커뮤니티 거의 대부분에 대한 글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반 도서 커뮤니티인 '도서 갤러리' 정도를 제외하면 내가 소속감을 느낄 정도의 애착을 보였던 커뮤니티는 모두가 장르문학 커뮤니티였으므로. 쓴 나도 종종 내용을 잊어버릴 때가 많은「작가들에 대한 가쉽」정도를 제외하면 예전 글을 잘 뒤져보지 않는 성격이지만, 요즘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당해서 그냥 일부러 찾아봤더랬다.

문제는 제게 좋은 '후원자'는 있었을 지언정 좋은 '조언자'는 없었다는 겁니다. 주변의 친구들 중에는 독서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어른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시 기껏 중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제가 독서 일정의 하나부터 열까지 다 스스로 통제해야 했다는 거죠. 좋고 나쁜 걸 구분하기이전에 어떤 책이 존재하느냐의 여부도 잘 모르는 소년이 뭘 알겠습니까. 초등학생 시절에는 무턱대로 서점 전체를 뒤져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오는 식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책 한 권 사는데 3,4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는 무식한 방법이었지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이라는 건 그 때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어요. 어떤 책이 좋다고 말해주는 자료는 거의 구할 수가 없었으니까.

(중략)

그리고 이듬해 초에 저희 집에도 인터넷이 설치되었습니다. 속도도 느린 모뎀으로 접속을 하고, 제가 야후 코리아에서 가장 먼저 검색해본 단어가 '판타지'였습니다. 장난 삼아 한 거였죠. 헌데 판타지 소설 관련 사이트가 100개도 넘게 쏟아지더군요. 경악했고, 경이로웠습니다. 자발적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집단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지요.

이 글을 읽으며 떠올렸던 사실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무렵의 내게는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정말로 절실했다. 두번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게 좀 더 명확해진다. 나는 그들이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집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반겼다.

거기에서 떠오른 두번째. 굳이 판타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 없지 않았을까. 어쨌든 당시의 나는 장르를 막론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나눌 사람들 자체가 필요했다. 심지어 나는 내게 전혀 생소한 장르를 배워 익혀서라도 그 '책에 대한 이야기'에 끼려고 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꼭 '판타지'일 필요는 없었다. 추리나 SF, 호러였어도, 심지어 로맨스였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당시의 내게 중요한 건 독서가로서의 '생존'이었으니까.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에는 유감이 없다. 그랬으면 사실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다. 판타지는 그 자체로도 정말 매력적인 장르이지만, 내게 책 정보 찾는 법을 가르쳐준 은인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적어도 10년 전 중1 때처럼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몰라 헤매지 않는 건 오롯이 판타지란 장르의 공이고 그 판타지를 통해 만났던 수많은 독서가들의 공이다. 그런 장르를 미워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 팬덤. 10년간 변한 건 나만이 아니다. 팬덤도 변했다. 그것도 내게는 썩 불유쾌한 방향으로. 지금에 와서 내가 왕년에 판타지 팬덤에게서 느꼈던 경이감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보다 윗세대에 해당하는 판타지 팬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하이텔 환동, 워터가이드, 드라클 등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 동안 팬덤들이 축적해왔던 성과들도 거의 대부분 소실되었다. 앞에서 선도해줄 선배 세대 팬덤도, 곁에서 함께 감상을 공유할 동료 팬덤도 거의 없다. 딱히 선도하는 이들까지 바라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즐겁게 읽은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공감을 얻을 이들 정도는 바라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요즘 장르문학 커뮤니티의 대부분은 정말 종류를 불문하고 책 이야기만 해줘도 감지덕지할 판국이니...

이런 상황에서도 굳이 장르문학 커뮤니티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가만 곱씹어보면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그만둔다고 해서 딱히 잃을 게 많지도 않다. 기왕 말했듯이 내가 최근 들어 활동하던 커뮤니티 중에서 나와 성향이 맞아보이는 이는 정말 드물고, 그런 이들은 대부분 굳이 그 커뮤니티를 찾지 않는다 해도 접촉할 방도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건, 서로의 블로그를 찾아주건.




슬슬 매트릭스에서 떠날 때도 되었다는 이야기다.
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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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거장과 마르가리타』팬질을 했으니 내친김에 내 전문 영역이 아닌 데까지 한번 나가보자.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영미권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소재로 한 곡들이 생각보다 많다. 본국인 러시아에서는 이런 곡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궁금하기도 한데, 일단은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곡들을 이야기해보...려고 몇 곡 유튜브에서 검색해봤는데 마음에 드는 곡이 많지 않다. 싹 다 지우고 한 곡만 남겨놓는다.

프란츠 페르디난드 - Love And Destroy(2004)




스코틀랜드 밴드인 프란츠 페르디난드의 Love And Destroy(2004). 마녀로 분한 마르가리타가 모스크바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을 따온 노래이다. 그 흥겨운 분위기가 제법 마음에 드는 곡.

프란츠 페르디난드 - Love ANd Destroy (가사)


요건 라이브 버전...



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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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릴 없이 위키피디아를 떠돌다가 발견한 가십.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작가인 미하일 불가코프와 관련된 이야기다. 사실은 판갤에 '개독교' 관련 떡밥이 나돌길래 올렸던 자료인데, 북시 위키에도 올려볼 요량으로 겸사겸사 썼으니 블로그에도 저장 차원에서 올려본다.

-

최근에는 러시아 최고의 환상 소설가라는 평가까지 받는 미하일 불가코프는 사실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소련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소련 내에서 거의 금기시되는 작가였다. 이는 그가 소련 체제에 대한 강렬한 풍자를 담은 작품들을 워낙에 많이 썼던 까닭인데,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거장과 마르가리타』도 예외는 아니다. 모스크바 시내에 악마가 출현하여 온갖 소동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사실 소련 체제에 대한 풍자만이 아니라, 당시 소련 문단에 만연한 리얼리즘 중시 풍조 때문에라도 악평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루마니아에서도 챠우세스쿠 정권 초기에 『드라큘라』가 허무맹랑한 작품으로 낙인찍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물론 『드라큘라』가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라는 게 밝혀진 뒤에는 독재 정권의 태도도 달라졌지만.)

어쨌든 시대가 달라진 뒤의 러시아에서는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에 원작자 미하일 불가코프가 살았던 아파트가 일종의 성지로 떠올랐다. (이 아파트는 작중 악마, 볼란드가 머물렀던 집의 모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곳을 성지로 여긴 집단이 팬들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모스크바에 소재한 악마주의 단체의 관심도 모았고, 결국 원래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고급 아파트였던 미하일 불가코프의 집은 미하일 불가코프의 팬들과 '사탄주의자'들이 매일 같이 몰려와 분탕질을 쳐대기에 이르렀다. 결국 2003년에 완전히 씻어내고 하얀색으로 다시 도색하긴 했지만, 그들이 벽에다 하도 낙서와 그래피티, 그림 따위를 남기는 바람에 몇 번이나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대로는 좀 곤란했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의 주민들은 아예 불가코프의 집을 정식 박물관으로 개장하길 원했고, 불가코프의 팬들도 90년대 초반부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단을 만들어 자금을 모았다. 문제는 건물주와의 협상이 영 시원찮았다는 점이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와중에 전혀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2006년 12월 22일, 인근 주민인 알렉산더 모로조프라는 주민이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사탄의 프로파간다가 분명하다며 이 집에 테러를 가했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는 vandalize라고 표현) 이 사건이 협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07년 4월 결국 이 집을 토대로 공식적인 미하일 불가코프 박물관이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

미하일 불가코프 팬 사이트에서 찾아낸 미하일 불가코프 박물관 (모스크바) 전경.


-

내친김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어떤 분에게서 들은 썰을 풀어보자면...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판권 상태는 약간 이상한 형국이다. 원작자인 미하일 불가코프가 1940년대에 사망한 후 이 소설의 판권은 미하일 불가코프의 세번째 부인(여주인공 마르가리타의 모델)이 소유해왔다. 66년에 출간된 복간본도 이 부인의 감수본인데, 문제는 이 부인이 사망한 뒤인 1995년에 이 작품의 영화판이 제작되면서부터였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자 갑자기 이 부인의 먼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영화 감독과 제작사에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그를 저작권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소송까지 벌어졌는데, 결국 재판부에서는 문제의 사람에게 손을 들어주었고, 결국 현재의 저작권은 원작자가 생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넘어가 버렸다.

-

썰을 풀다 보니 러시아 여행도 한번쯤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ㅈㅇ님 말씀으로는 어딜 가나 수도는 인심이 훨씬 각박하기 마련이라고 하시지만 미하일 불가코프의 공식 박물관은 모스크바에 있으니. 키예프의 생가에 박물관이 하나 더 있다고는 하나 볼란드가 살았던 집의 모델이라는 곳이 따로 존재하는 바에야 다른 박물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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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vs 패션

일기/독서 2009/10/14 17:11
이틀 전, 이글루스에서 책과 관련된 논쟁이 터졌다. 평소 이글루스 메인 화면은 거의 보지 않는지라 이번에도 주변 사람들의 포스팅을 통해서 전해 들었는데, 사실 처음에 그 소식을 접할 때만 해도 별로 관심 줄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주제인즉슨 '독서 vs 패션'. 도서 갤러리에서만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떡밥 아니던가. 이번에 필시 누가 만들어낸 떡밥에 순진한 도서 밸리 사람들이 다발로 낚인 일이리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본문을 봤더니 그게 전혀 아닌 거다. '독서 vs 패션' 논쟁에서 내게 익숙한 구도는 보통 패션(이 아니라 술, 자동차, 영화 등 어떤 취미라도 좋다)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독서 커뮤니티에 난입하여 '책 읽어봐야 남는게 뭐냐?' 하는 식으로 따지고, 거기에 멋모르는 사람들이 낚이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정 반대의 구도라고 했다. 좀 희안한 일이다 싶어서 문제의 글을 직접 찾아봤다.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도서 밸리에서 일어났던 일이리라고 짐작했다가 한참 해맸었다. 결국 패션 밸리에서 찾아냈지만.)

문제의 글을 처음 열어봤을 때의 감상이란, '아 또 이 사람인가'. 나도 들어서 이름자 정도는 아는 사람이었다. 세기말 영문학 교수 전설인가 뭔가 하는 '소설'을 실화인양 자기 블로그에 연재했다가 엔젤하이로 위키나 찌질열전 등에서 사정없이 까였던 양반 아닌가. (현재는 관련된 글이 거의 다 지워졌지만) 관심병 환자인줄은 알았어도 나르시시즘까지 있는 줄은 몰랐었는데.

대충 사건을 요약해보면 강남 쪽의 식당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양들의 침묵』을 읽다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패션 센스와 독서 취향에 대한 흉을 들었고, 거기에 욱해 패션 밸리에서 패션에 대한 독서의 우월함을 역설하며 내친 김에 자기 책장까지 인증했다는 모양이다. What the...

'디스이스게임'에 실린 원사운드의 만화(부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블로거 말도 일정 부분은 옳다. 누구건 취미 생활에 쓸 돈과 시간은 한정되기 마련이고, 그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그로 인해 개인 간에 발생하는 차이를 우리는 취향이라고 부른다. 좋지 않은 뉘앙스로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취향 좀 존중해주시죠?'라는 유행어가 의미하는 바가 뭐겠나. 하지만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상대방의 취향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자신의 취향이 비난받았다고 상대방의 취향을 비난한다면, 대체 비판자와 비판 대상 사이에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단순히 수집가 마냥 책장을 장식하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책을 읽기 위해서 사고, 그 책을 통해서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얻기를 바란다. (그것이 말초적 즐거움이건, 새로운 깨달음이건.) 적어도 그 책을 읽기 전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책을 보고, 구입한다. 결국 책은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책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취존중'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당초의 논쟁거리였던 책과 패션 두 가지만 놓고 본다면, 나는 이 두 매체가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란 기본적으로 자기 세계에 천착하는 행위이다. SF팬덤 쪽에서는 '경이감'이라는 용어를 통해 소설을 통한 인식의 확장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이 또한 자기 인식, 자기 세계의 깊이를 더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성격이 괴팍해지고 점점 외곩수가 되어간다는 '편견' 또한 이런 점에서 비롯되었을 테고.

반면 패션은 자기를 드러내는 행위이며 다분히 사회적인 행위이다. 타인을 신경쓰지 않으면 옷을 고르지는 않는다. 결국 '적절한' 옷을 고른다는 건 자기 주변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조율한다는 의미이기 마련이다. 적어도 그걸 신경쓴다는 증거는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일상 생활에서 입는 옷과 소개팅 때 입는 옷과 장례식 때 입는 옷이 다 다르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마련하는게 새로운 책을 사는 것에 비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위에서 인용했던 만화에서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독서 vs 패션? 대체 왜 그런 걸 구분한단 말인가. 책 좋아하는 사람은 옷 잘 입으면 안되고, 옷 잘 입는 사람은 책 읽으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지 않은 바에야, 둘 다 잘 하면 그만이다. 어느 한 쪽에 함몰되어버려서야, 아깝지도 않은가?



P.S.

여담이지만 이 논쟁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문제의 블로거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거나 적어도 책 관련 커뮤니티에선 활동한 전력이 없는 사람이리라고 짐작했다. 독서에 익숙한 - 다시 말해 좋은 책들이 주는 '경이감'에 익숙한 - 사람이라면 이런 논쟁에서 특정 책을 거론하며 자신의 취향을 뻐길 리 없고, 독서 커뮤니티에서 숱한 고수들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이런 논쟁에서 자신의 책장을 인증하는 한심한 짓을 저지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독서 많이 한 사람 같으면 이런 논쟁을 일으키지도 않고. 

문제의 포스팅과 책장 인증을 보고서는 내 짐작이 거의 맞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올해 5월 말에야 귀국한 사람이니 장서량 자체가 적은 점이야 이해한다 쳐도(배송료가 워낙 비싼 통에, 해외로 나갈 때는 자기 책을 거의 가져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 시바 료타료나 댄 브라운 소설을 역사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수준이란... 그 외에도, 차마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자칭 영문학도이며 긍지있는 독서가임을 자부하는 사람 치고는 장서 수준이 대략 난감했떤게 사실이다. 패션에 대해 운운하기 전에 그 좋아한다는 독서부터 좀 충실히 하라고 말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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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일기/독서 2009/09/18 11:56

와우북 페스티발 행사로 진행되는 《장르문학 작가와의 만남》 행사... 조이SF에 올라온 홍보글(링크)을 봤을 때 굉장히 의아했더랬다. '선착순 30명'이라고 못 박은 것 때문이었는데 김이환과 배명훈, 두 장르문학 작가의 청중 동원력을 너무 만만한게 본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일전에 SF도서관에서 열린 『U, ROBOT』작가와의 만남 이벤트 때도 대략 그 정도는 사람이 왔었는데 - 물론 그 때는 참여한 작가들이 여럿 되기야 했다 - 김이환 씨가 멀티문학상을 수상한 마당에 그보다는 더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뭐 그래도 관심 가는 행사인지라 신청을 하긴 했지만 영 찜찜한 기분에 좀 투덜투덜 댔었는데, 날개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홍보글을 보니 문제의 '선착순 30명' 운운한 구절이 온데간데 없었다. 

그러니까 요렇게...


황당한 기분에 와우북 페스티발 공식 카페에 가서 확인해봤더니 마찬가지... 정말로 30명이 거의 다 차서 제한을 슬쩍 풀어버린 것인지, 예상외로 신청이 저조해서 저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 의아하기야 하다. 물론 23일 당일에 가 보면 어찌된 곡절인지 바로 알 수 있겠지만서도.


P.S.

와우북 페스티발과는 관계없지만 9월 22일에는 배명훈 씨 단독으로 '우리문학콘서트'라는 행사를 한다는 모양이다.(링크)이 쪽은 인원 제한에 대한 말이 없고, 가면 저자 싸인북도 준다던가 뭐 그렇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있을까 싶지만 뭐... 나야 이 날에는 동아리 세미나도 있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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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6년)
상세보기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자니 아직 황금가지 홈페이지가 살아있을 때 누군가가 "『어스시』시리즈 나머지는 언제 번역되나요?" 하고 질문을 올렸다가 - 아마도 이영도의 팬이 아닐까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 "그딴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드래곤 라자』 양장본이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리플을 얻어들은 걸 본 게 생각난다. 해당 리플을 실시간으로 본 게 아니라 다른 일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이라 제때에 화를 내지는 못했고, 그 때문에 그날 내내 기분이 꽤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내가 이영도의 팬 때문에 불쾌함을 맛봐야 했던 두 경험 중 하나로 꼽는 사건이고. (또 하나는 뭐냐고? 음... 이영도가 한국문학사에서 따라올 위인이 없는 최고의 작가라고 강변하던 작가지망생과 키워를 벌였던 추억.)

지금 시점에서는 그 기억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문제의 그 팬이 그리도 떠받드는 이영도라면 절대 르 귄의 작품을 '그런 거'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부를 수도 없고. 이영도가 이 정도로 대놓고 빌려온 작가를 그 팬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우한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어스시』의 '진짜 이름'과 『눈마새』의 '신명' 사이의 관계에 대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까?) 예전 기억에서의 그 양반이 기껏해야 '철딱서니 없는 것' 정도였다면 지금은 '무례한 놈' 쯤으로 평가가 하향조정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좋은 작품을 점점 더 많이 접할 수록 이영도 '팬덤'에 대한 평가는 점점 떨어져가는게... 정말이지 광신도는 장르를 불문하고 만인의 적이라는 게 진리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독서 경험이다.

...라고 써놓고 보니 작품 이야기는 하나도 안했군. 작품 이야기는 나중에,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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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북시 위키(http://booksea.pe.kr/)의 '앤솔러지' 항목입니다. 미처 적지 넣지 못한 항목에 대한 제보 또한 받습니다. 이 글에 댓글로 달아주시거나 해당 위키 항목(링크)을 직접 수정해주시면 됩니다. 단, 『태평양 횡단 특급』이나 『바람의 열두 방향』같은 개인 단편집은 이 항목의 수집 대상이 아니랍니다.


한국문학
앤솔러지


거울

크로스로드

하이텔

기타 창작 소모임

미분류


외국문학 앤솔러지

동화

판타지

SF

호러

미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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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기/독서 2009/04/23 14:26
좋은 서평의 조건이 작품의 가치를 온당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면, 내 서평들은 모조리 실패작들이다. 서평을 읽고 나서도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나쁜 작품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내 서평은 작가, 독자, 서평자 모두에게 불행하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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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그에서 번역자에 대한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썼던 글입니다. 커그에 올렸던 버전과는 달리 이윤기 씨에 대한 부분이 추가되었습니다.

────────────────────────────────────────────────────

김병철
범우사에서 주로 책을 내셨던 영문학자죠. 학계에서는 『서양문학이입사 연구』의 저자로 유명하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헤밍웨이나 마크 트웨인의 번역자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죠. 정작 저는 리처드 버튼 판 『아라비안 나이트』의 번역자로 기억합니다만.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한쪽 눈이 멀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면서도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여하간 이전 세대를 대표하는 번역자라 할 만한 분이지만 현재는 고인입니다. 2007년에 돌아가셨지요.

김석산 
한국 영문학자 중에서는 고대 영문학의 최고 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인물...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신 관계로 한국에는 이 양반의 책이 얼마 없더군요. 탐구당에서 나온 『베오울프』 번역본이 이 분의 작품입니다. 무려 영한대역본이죠. (그것도 고대 영어...)

김석희
가끔은 이세욱 씨와 헷갈리곤 하는 분... 『로마인 이야기』가 대박을 치기도 해서 지명도만 따진다면 아마 최고 수준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실력 있는 번역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경우는 번역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윤문에 가까운 짓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원저자의 허락은 받았다지만 그런 번역이 권장될만한 일인가 싶긴 합니다. 또... 얼마 전에 봤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영 신통찮게 읽은 것도 김석희 씨의 번역을 미심쩍게 바라보게 하는 이유가 되었고요. 

김운찬 
움베르토 에코의 제자.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김정란 
2001년 부근에는 이명원이라는 평론가와 함께 '김현 논쟁'을 벌인 적도 있는 분이죠. 원래는 본업인 시 창작 쪽에 힘을 쏟았는데 최근에는 신화 - 특히 켈트 - 쪽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시더군요. 완소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나온 『아발론 연대기』가 이 분의 번역입니다. 문제의 논쟁 때 문학과지성이나 서울대 불문과 파벌에 밉보인 탓에 그 쪽에선 활약하기 어려워진 걸까 싶기도 합니다. 

김창석
작가들에 대한 가십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꺼냈었죠. 출판사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번역 원고가 모조리 타버리는 횡액을 당하면서도 다시 번역을 해서 개정판을 냈다는 집념어린 번역자... 하필 그 작품은 분량도 많은데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는데 말이죠. 

성귀수 
개인적으로는 번역자 지망생들이 롤 모델로 삼을만한 한국인 번역자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이 양반이 보여준 '프로 정신'이라는게 워낙 대단한 수준이었으니까요. 원래는 추리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런 책은 전집이 나와야 한다'라는 생각에 아르센 뤼팽 전집을 기획했고, '추리 문학 팬덤에게 까이는 게 두려워' 아르센 뤼팽에 대한 공부를 한 결과 그 자신이 최고 수준의 팬덤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프랑스 본토에서 나온 전집에마저 누락되었던 에피소드마저 발굴해낼 정도의 집념과 열정을 보였던 번역자... 거기에 기본적인 실력도 물론 있었고요. 이 정도로 성실한 번역자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안정효 
이윤기와 함께 이전 세대를 대표하는 번역자죠. 지금은 번역을 그만두고 창작에만 전념하시는 걸로 압니다. 딴에는 당연한 일이겠죠. 안정효에게 있어 번역이란 애초부터 창작 수업의 일환이었습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창작을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영어로 소설을 썼다고 하죠. (나중에 이야기되겠습니다만 천병희 선생에게도 이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결국 『하얀 전쟁』으로 데뷔하면서 창작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비롯한 여러 소설들은 해외에 번역되기도 했고... 김석희 씨도 그렇고 이윤기 씨도 그렇고 번역자들은 대개 창작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더랍니다만 그걸 안정효 씨만큼 균형을 이뤄낸 사례는 거의 없을 겁니다. 

이세욱
데뷔 번역작이 열린책들 판 『드라큘라』였죠. 출간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작품의 완역본은 저 판본 뿐입니다. 번역이 쓸만하다는 건지 아니면 상업성이 없어서 다른 출판사들은 별로 뛰어들고 싶어하질 않는다는 건지... 그 뒤로도 열린책들에서 계속 활동하신걸 보면 판매 실적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물론 그가 번역한 『개미』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겠죠.

이세욱 씨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친밀해진 차경아 엔데 커플(?)은 번역자가 작가의 창작 세계에 깊이 관여하여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우리가 『끝없는 이야기』라는 걸작을 만나게 된 것엔 그 번역자 차경아 씨에게도 공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이세욱 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 정도의 이야기까진 듣지 못했지요.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내는 책들이 가면 갈수록 실망스럽더라는 평가들을 참고한다면 뭐...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이윤기 
이 사람처럼 독자들의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번역자도 있을까 싶습니다.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누리지만 먹물 좀 먹었다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혹독하게 까이는 사람이니까요. 『장미의 이름』 초판의 오역을 무려 삼백 여 곳이나 지적했던 강유원 씨나 『문화의 오역』이라는 책에서 거의 이윤기 씨를 주 타겟으로 삼아 무참하게 썰어댔던 이재호 명예교수 등... 이전 세대에 명성을 누리던 번역자들이 최근의 번역 논쟁을 통해 평가절하되는 경우는 꽤 많은 편이지만 이윤기 씨처럼 극적인 경우가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윤기 씨의 진가라 한다면 번역보다는 외려 창작이나 편집에서 더 빛을 발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령 이윤기가 쓴 『뮈토스』만 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변변찮은 책이 없던 시절에 출간된 귀중한 책이거든요.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그리스 로마 신화』도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을 지언정 엄청나게 팔린 덕분에 국민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교양 수준을 높여준 게 사실이고... 그 점에서 본다면 이윤기 씨가 번역 쪽에서 욕을 들어먹었던게 안타깝기도 합니다. 좀 더 일찍 전문 저술가로 나섰다면 이윤기 씨의 평가도 훨씬 괜찮았을 텐데 말이죠. 

정영목 
정말 여러가지 의미에서 유명한 분이죠. 소위 '팔리는' 책의 번역은 정말 많이 했고,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서도 이 분의 이름이 심심찮게 보이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르문학 번역에도 여기저기 손대기도 했고요. 홍인기 씨와 함께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을 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분의 SF 번역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특히 『낙원의 샘』같은 경우는 기존에 정성호 씨의 번역으로 나왔던 책임에도 그에 못지 않은 오역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SF 팬덤의 장탄식을 자아냈다 하고... 번역 관련 상을 여러번 수상하기도 했던 최용준 씨도 『미메시스』에서 이 책의 번역에 대해 무자비한 혹평을 가했었습니다. 정영목 씨에게 동정이 가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융의 『황금 당나귀』(The Golden Ass)를 번역하면서 제목의 'Ass'를 엉덩이로 옮기는 실수를 했는데, 이를 절친했던 대학 후배였던 김소진 씨가 소설에까지 써먹었다고 하죠. 

정태원 
추리팬덤계에서는 꽤 명성이 높은 번역자 정태원씨... 번역에 굉장한 정성을 들이는 분이죠. 그 본인이 굉장한 추리문학 팬덤인데다가 하필 셜록 홈즈 전집을 번역해서, 아르센 뤼팽 전집을 냈던 성귀수 씨와는 여러모로 대조되는 번역자입니다. (지금도 하우미스테리 등의 추리팬덤 사이트에서 이 분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90년대 초반에 이미 셜록 홈즈 전집의 번역을 다 끝내놨지만 당시로선 추리문학의 흥행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라서 결국 거진 10년이 지나 황금가지판 셜록 홈즈 전집이 대박을 친 후에야 겨우 책을 낼 수 있었던 안습의 역사로도 유명하고... 

차경아
차경아 씨의 에피소드는 제가 가는 곳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다녔던 지라 이미 접해본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사실 작가들에 대한 가십 거리를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기도 했죠. 제가 이 번역자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건 이 번역자와 미하엘 엔데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모델 중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쓰기는 좀 그렇고, 예전에 커그에 올린 다른 글에 썼던 글을 그대로 가져오겠습니다.

1977년, 한국에서 차경아 씨의 번역으로 첫 소개된 『모모』는 그야말로 밀리언셀러라 할만한 상업적 성과를 거둔다. 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는 이후 독일에도 알려져 미하엘 엔데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하엘 엔데는 차경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담은 편지를 보냈고, 그 이후로도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후일 미하엘 엔데는 차경아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며 『끝없는 이야기』의 경우는 아예 구상 단계부터 차경아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다.

천병희 
이 분은 서울대 문리대 1학년 때부터 그리스문학에 관심을 둬서 여름방학 내내 그리스어 사전을 가지고 호메로스 작품을 읽으려 했다 합니다. 호메로스 사전이 나와있는줄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느라 고생 좀 많이 하셨다고 하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그리스·라틴 문학 계통의 최고 권위자라 할만한 양반입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천병희 씨 말고도 희랍어 원전으로 작업하는 번역자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추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대 그리스·라틴 문학의 번역은 온전히 천병희 선생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신세였죠. 지금도 이 분을 대신할 번역자는 없습니다. 

허창운
천병희 선생이 고대·그리스 문학에서 독보적이라면 허창운 서울대 교수는 고대 독문학에서 말 그대로 독보적으로 활약하는 분입니다. 천병희 선생의 경우처럼 후속 주자들이 생겨나는 것도 아닌데다 천병희 선생처럼 번역에만 전념하는 분도 아니라서 어깨가 많이 무겁죠. 아무튼 고대 독일어를 이 분처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역자는 한국에 없다고 합니다. 『니벨룽겐의 노래』, 『파르치팔』 등을 이 분이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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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판입니다. 올해 1월 20일부터 7월 24일까지 여러 차례에 거쳐 올렸던 항목들을 모두 통합했고,  각 항목에 출처를 표시했습니다. 간혹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너무나 널리 퍼져서 굳이 출처를 달 필요가 없는 항목에는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말따나마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작가 이름을 두들겨보기만 해도 나오는 내용이니까요.

본 문서를 쓰는데 주로 도움 받았던 사이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WikipediaI(영문판)
- 엔젤하이로 위키
- 하우미스테리
- 도서갤러리
- Djuna의 영화 낙서판

어쨌든 이번 갱신을 마지막으로, 이 문서는 더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잘못된 내용을 제보해주면 가끔 수정은 하겠죠. 

여담으로... 이 문서는 본디 제가 도서 정보 위키 사이트(http://booksea.pe.kr/ )를 운영하던 중에 나온 산물이기도 합니다. 이 문서에 실린 정보들은 저 위키에서도 검색 가능하고, 업데이트가 된다면 아마 그 쪽에서 이루어지겠죠. 시간 나면 가끔씩 놀러오세요.





그렉 이건
한국에는 하드 SF계 걸작 『쿼런틴』이 소개된 작가 그렉 이건. 현재 영미권에서는 테드 창 이상의 인기를 누리는 작가이건만 한국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소개가 되지 않는 편이다. 이와 관계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렉 이건은 문장을 지독히도 못쓰는 작가라고 한다. 그나마 김상훈의 번역을 거치면서 그럭저럭 볼만한 문장이 되었다고. 아서 클라크나 필립 딕도 그랬다지만, 영미 SF계에서는 뜻밖에도 아이디어가 대단히 좋은 대신 문장은 엄청나게 못쓰는 작가들이 많다.


김민영
한 편의 소설로 한국 장르문학계의 전설이 되어버린 김민영... 그러나 그가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을 썼던 것은 군의관 시절 퇴근 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본업이 너무나도 바쁜 나머지 작품 활동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다고.


김상훈

현재 한국 SF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번역가·기획자를 꼽는다면 누구나 단연 김상훈을 꼽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SF 팬덤에서 활동해왔고, 《그리폰 북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를 비롯한 굵직굵직한 시리즈들을 기획해왔던 그에 대한 팬덤의 신뢰는 깊다. 하지만 수년 전에 그가 조금은 이색적인 오역 시비에 걸린 적이 있다. 발단은 2004년에 모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모 작품에 대한 서평이었다. 이 서평에서 그 블로거는 과거 김상훈이 번역한 판본과 새로 나온 판본을 비교하며 새로 나온 판본의 번역이 더 마초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에 새 판본의 번역자 본인과 그 지인들이 블로그에 몰려가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 사태는 당시 시공사가 운영하던 장르문학 웹진 《디겐》과 행복한책읽기 사이트 게시판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급기야 출판사 직원이 행책 게시판에 "누가 더 번역을 올바르게 했는지 비교해보자"는 글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당시 정황으로 보아 해당 번역자와 협의되지 않은 우발적인 행동인 듯 싶다) 하지만 이에 홍인기 씨가 정말로 원문과의 대조를 해보자 실제로 새 판본에 오역이 많았다는 점이 밝혀졌고, 문제의 글들이 소리소문없이 삭제된 체 사건도 종결되고 말았다. 결국 김상훈 본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셈이지만, 이 해프닝(?)은 김상훈의 뛰어남을 재확인하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김수영

시인 김수영은 생계를 위해 영문학 번역도 하곤 했다. 그러나 김수영이 번역했다고 알려진 작품 중에서 최소한 한 작품은 그냥 이름만 빌려주었다. (출처 : 김수영,『김수영 전집』민음사)


김현
요한 호이징가의 중세사 명저인 『중세의 가을』를 최홍숙 씨에게 번역해보라고 권한 사람은 비평가 김현이었다. 과연 번역은 되었지만 이것은 프랑스어 중역판이었고, (호이징가는 네덜란드인) 이 때문에 작품 내에서 사용된 인명도 실제 국적과 상관 없이 모조리 프랑스 식으로 표기되었다. (출처 : 요한 호이징가, 『중세의 가을』문학과지성사) 

생전의 김현은 바짝 졸인 라면을 안주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김현의 집에서는 김현과 김현의 아내 모두 담배를 피웠는데, 아내 쪽이 훨씬 골초였다고 한다. (김현은 49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출처 : Cato,「[라이벌] 복거일과 김현: 주류경제학에 근거한 소설가와 정신분석 중심 인문주의 평론가의 관계에 관한 잡담」, 듀나 게시판)

김현은 ‘문학과 지성’과 관계를 맺은 모든 문인에게 서로 말을 틀 것을 ‘강요’했다. 서로 말을 높이면 벽이 생겨 관계가 원만해지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현 자신이 신입생 시절, 교양 과목 강사로 들어온 26세의 이어령에게 “교수님. 나이 차이가 열 살이 안 되면 벗 삼아도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농을 걸었던 적이 있다. 김현 자신도 이어령과 같은 나이인 26세에 강사 생활을 시작했고, 훗날 문지와 연을 맺게 된 왕년의 제자들에게 말을 놓으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문지 내의 다른 문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관계가 형성되길 바랐다고. 자신보다 연상이었던 김주연, 김병익 등에게도 시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지만 다섯살 위인 문인들에게는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김현의 '말 트기 주의'는 수포로 돌아간다.

김현은 매일 저녁 퇴근 후 반포치킨이라는 가게에 들러 문청들의 글을 봐주곤 했다고 한다. 황지우가 김현을 추모하며 쓴 시 「비로소 바다로 간 거북이」에 등장하는 맥주집이 바로 반포치킨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비평가를 꿈꾸었던 고명철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이 가게를 찾아 김현과의 관계를 맺었다고도 한다. 김현은 생전에 이 가게에 외상 장부를 트고 월급날에 외상값을 갚았다고 한다. 주인이 아직도 그의 미결 외상장부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김현의 아들에 따르면 그의 집에서는 김현과 김현의 아내 모두 담배를 피웠는데, 아내 쪽이 더 골초였다고 한다.

김현은 간경화로 사망하였는데, 생전에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고 한다. 아예 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적은 「불꽃의 말」이라는 에세이까지 썼을 정도다. 이 글에 따르면 김현은 동년배에 비해 다소 늦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술을 접하기 시작하였으나 "술자리의 분위기를 지워 버린 나의 삶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평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대취한 뒤 종로 5가에서 더불어 반발광(!)을 한 사건, 사상계 인근의 '북경반점'에서 빼갈 18병을 나누어 마시고 필름이 끊어진 것, 항상 낙지를 놓고 이문구와 함께 막걸리 한 되를 마셨다는 얘기 따위가 전한다. 

김현은 술자리에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면서도 술자리에서 중언부언하는 사람만은 몹시 싫어했다. 반복된 언어는 지루한 감수성 밖에 담지 못하기에, 중언부언은 문학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훈

사실 김훈은 우륵에 대한 소설을 쓰면서 전작인 『칼의 노래』의 제목을 흉내낸 제목을 붙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현의 노래』라는 제목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출판사였다. 결국 『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고 나자 독자들은 김훈을 비난했다...

부산 중국민항기 추락사고 당시에도 현장취재차 부산에 내려가 병원에서 유족들을 취재하고 있는데, 당시 대통령 후보 당내경선 중이던 노무현 후보가 위로차 왔다가 유족들과 함께 있는 김훈의 손을 잡고 "얼마나 심려가 크십니까?"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때는 아직 『칼의 노래』를 읽기 전이었던 듯 하다. (출처 : 권태호,「김훈이 한겨레를 떠난 이유」)


니콜라이 고골
소련 정부에 따르면 고골의 시신을 이장하기 위해 묘를 팠을 때 그의 머리가 없고 몸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 소련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는데,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바흐루신(1865–1929)이라는 사람이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모스크바 시의회 의원, 왕립 과학 아카데미 명예 회원, 러시아 극장 협회 창립자였던 바흐루신은 연극 관련 기념품의 수집가로도 유명했던 사람이다. 소문에 따르면 그가 1909년에 고골의 두개골을 도굴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바쿠루신이 상당히 인상적인 연극 컬렉션을 보유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 컬렉션은 현재도 모스크바에 위치한 A.A.바쿠루신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 때문에 평생 지독한 고생을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에 보면 도시 빈민들의 가난한 삶과 분노, 자기혐오와 같은 것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하필 그는 지독한 도박광이었으며, 빚을 갚기 위해 소설들을 미칠듯한 장광설로 늘려쓰곤 했다. 혁명 운동에 참여했다가 시베리아 유형을 다녀오고 나서는 '폭력 혁명'에 대한 끔찍한 혐오를 보였지만, 그 못지 않게 귀족들에 대한 냉소적 시선을 보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명문 귀족 집안 출신으로, 러시아 최상층에 속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극심한 가난을 겪은 적은 없었지만 자신이 귀족 출신이라는 점에서는 꽤나 자책감을 느꼈고, '사유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하거나, 농사를 배우겠답시고 거름통을 지고 다니며 농부가 되었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흥미로운 것은 이후 소련에서 이들 작가에 대한 대우가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하류 계층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보였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폭력 혁명을 혐오했다는 이유로 '반동 작가'로 낙인찍혔고, 귀족적이며 종교적인 작품을 쓰곤 했던 톨스토이는 훗날 그의 작품이 정부의 국책 사업으로 영화화되는 영예를 누렸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투르게네프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데다 젊은 시절부터 문학적 명성을 누려, 평생 가난과는 먼 삶을 살았다. 가난한 도박광인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제발 도박에서 손을 떼라"는 편지와 함께 일부러 절반의 금액만 송금하였고 이를 모욕으로 여긴 도스토예프스키가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했다는 일화도 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듀나
SF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듀나의 신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하지만 듀나의 신상은 듀나의 책에 평론을 써주기도 했던 모 평론가에 의해 1차로 밝혀진 적이 있다. 30대 중반의 여성, 혼자 쓰는 게 확실함 등... 그 외의 신상 역시 독자들 사이에서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으리라는 설도 있다. (출처 : S모대 국문과 K교수)

듀나의 성별에 관해서는 1990년대에는 김재국이 「한국 과학소설의 현황」이라는 글에 듀나의 「일곱번째 별」을 평하면서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의 정체를 여성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될 뿐만 아니라 음식 요리에 관한 구체적 서술도 여성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이기 때문"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평을 남긴 바 있다. 한편 듀나 자신은 수년 전 모 출판사에서 얼굴 대신 쓸 이미지를 달라고 하자 뭉크의 《절규》를 보냈는데, 이것도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성별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 바 있다. 그 외의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출처는 알 수 없으나 최근에는 듀나가 1971년생이며, 신촌의 모 대학을 나왔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루머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물론 사실 여부는 확인 불가. (출처 : 「듀나」, 엔젤하이로 위키)


러브크래프트

지금이야 빛의 톨킨, 어둠의 러브크래프트라는 식으로 장르문학 팬덤 사이에서 칭송받는 작가이지만 생전의 러브크래프트는 지독히도 인기 없는 작가였다. 그는 작품 활동보다는 동료 작가들과의 서신 교류에 더 몰두했고, 나머지는 인종 차별에 대한 욕설을 퍼부으며 지냈다. 허나 그의 아내는 유태인이었고, 러브크래프트도 30년대 말에 독일에서 일어난 유태인 린치 사태에 대해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말년의 그는 콩 통조림과 아이스크림만을 보내는 기괴한 식습관을 보이다가 사망했다. (출처 : 「Howard Philips Lovecraft」, Wikipedia)

덧붙여, 그는 어머니에게까지 못생겼다는(ugly) 소릴 들었다. (출처 : 「Howard Philips Lovecraft」, Wikipedia)

맹인 작가 보르헤스에게 책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알베르토 망구엘의 회고에 따르면 보르헤스는 러브크래프트를 무척이나 짜증스러워했으며, 그의 작품을 패러디한 단편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사정을 잘 모르는 러브크래프트 팬들은 '보르헤스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았다'며 희희낙락하곤 한다. (출처 : 「Howard Philips Lovecraft」, Wikipedia)

팬임을 자처하는 스티븐 킹 또한 러브크래프트를 두고 '문체가 지랄맞고 대화체가 엉성하다'며 투덜댔었다. (출처 : 유동닉, 도서갤러리)


랭보
 
17세의 나이에 필생의 걸작을 죄다 써낸 아르튀르 랭보는 그 나이에 동성애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의 동성애 파트너인 베를렌은 신혼임에도 신부를 내버리고서 랭보와 살았고, 나중에 랭보와 사이가 벌어지자 어린 남자 제자들을 유혹하며 지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레이 브래드버리

SF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911테러에 대한 영화를 찍으며 자신의 작품, 『화씨 451』을 딴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다만 정치적 견해차 때문은 아니고, 무어 감독이 브래드버리에게서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제목을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로버트 하워드

'소드 앤 소서러' 판타지 장르의 창시자이자, 근육질의 야만인인 주인공 코난이 등장하는 마초 소설 『코난 사가』(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짐)를 썼던 로버트 하워드. 사실 어릴때는 허약하고 심약하며 주변의 괴롭힘을 받는 왕따였다고 한다. 그러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접하고, 꾸준한 훈련 끝에 마침내 누구도 감히 괴롭힐 수 없는 신체를 완성하여 왕따에서 벗어났다고.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스포츠, 특히 복싱에 굉장히 몰두했으며, 기술보다는 힘이 좋은 복서들을 선호했다고 한다. (출처 : 「로버트 E. 하워드」, 엔젤하이로 위키)

그런가 하면 여러 연으로 된 장시를 단 두 번만 보고 암송하는 능력을 보이기도 해서 친구들을 감탄시켰다고. (출처 : 「Robert Ervin Howard」, Wikipedia)

동시대의 러브크래프트와 상당히 친했던 인물로, 크툴후 신화의 설정에 크게 관여했던 '러브크래프트 서클'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교류는 어디까지나 서신 교환으로만 이루어졌고,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출처 : 「로버트 E. 하워드」, 엔젤하이로 위키)

자상했던 어머니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의 인생관이 점점 음울해져갔던 것도 어머니의 결핵 병세가 악화되어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자 즉시 권총 자살. 이 때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출처 : 「Robert Ervin Howard」, Wikipedia)


로버트 하인라인
하인라인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해군 장교 출신이다. 보직은 주로 통신. 부함장까지 진급했다가 폐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전역해야 했는데, 하인라인은 긴 요양 기간 동안 물침대를 고안해내는 다소 특이한 업적을 남겼다. 인공 위성의 통신 이용 가능성을 발견했던 아서 클라크에 비하면 어째 모양 빠지는 업적이다.

하인라인은 The Saturday Evening Post에 소설을 기고함으로서 펄프 잡지를 넘어 주류 잡지에도 진출한 첫 SF 작가이다.


루이스 캐럴

중년 남성과 어린 소녀와의 사랑을 그린 소설 『롤리타』를 보며 독자들이 떠올리는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이지만 사실 작중 중년 남성의 모델을 제공했던 것은 애드거 앨런 포다. 루이스 캐럴은 정말로 순수하게 소녀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유년 시절 그와 놀았던 여성들은 훗날 그가 자신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출처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북폴리오)

앨리스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은 빅토리아 여왕은 루이스 캐럴에게 그가 쓴 책을 모두 읽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가 수학책과 논문을 받고는 꽤나 당황해했다고 한다. (출처 : 「루이스 캐롤」, 엔젤하이로 위키)


리브리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수학자인 리브리는 스무살에 이미 피사 대학 수학부 교수직을 제안받았으며 프랑스로 이주한 뒤에는 프랑스 학사원의 회원으로 선출되고 파리 대학 과학 교수로서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은 등 학문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인물이다.
그는 당대에 애서가로서도 유명했지만, 오늘날 그는 애서가로서보다는 전설적인 책도둑으로서 기억된다. 그는 공식적인 신임장과 커다란 망토로 무장하고서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에 숨어 있던 책들을 훔쳐오곤 했다. 심지어는 전질을 훔치기도 했는데, 오르세 도서관에서만은 어떤 책도 훔치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사서가 언론과 학계에서 유명하던 공직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에게 상시 옆에서 돌봐 줄 안내인을 한 사람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후에야 그가 저질렀던 범죄들이 밝혀지자 리브리는 즉각 2만 5천 프랑 어치의 책 열여덟 박스를 가지고 영국으로 달아났다. 숙련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4프랑이던 시절이다.
일단의 정치가들과 예술가, 작가들이 리브리를 옹호하기 위해 모였고, 특히 리브리의 친구였던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리브리의 결백을 철썩같이 믿어 리브리가 유죄선고를 받은 뒤에도 리브리를 옹호하는 발언을 그치지 않아 법정 모독 혐의로 법정에 서라는 명령까지 받을 정도였다. 물론 이들의 노력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리브리는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정착해 죽었는데, 죽으면서도 자신의 고발자에 대한 복수를 잊지 않았다. 리브리가 죽던 해 프랑스 학사원의 리브리 자리를 대신하도록 선출된 수학자 미셸 살은 카이사르, 피타고라스, 네로, 클레오파트라, 막달라 마리아의 육필 콜렉션을 구입하였는데, 이는 리브리가 자신의 후임자를 골탕먹이기 위해 유명한 위조범인 브랭-루카스에게 요청하여 제작한 위조품이었다.
사실 루카스가 만든 이 '작품'들은 대단히 조잡한 수준이었지만 미셸 살은 정말 철석같이 그것이 진품이라고 믿었다...

(출처 :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Richard Bach)는 평소 자신이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출처 : 「Richard Bach」, Wikipedia)

그는 17살 때부터 비행을 취미로 들여, 영국 공군에서 파일럿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첫 아내와 헤어지고 만난 두번째 역시 파일럿이었고, 아들 중 한 사람도 파일럿이었다. 그가 쓴 작품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비행과 관계된다. (출처 : 「Richard Bach」, Wikipedia)


리처드 버튼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라비안 나이트』는 영국의 언어학자 리처드 버튼이 집대성하고 번역한 작품이다. 사실 리처드 버튼은 당시의 기준으로 본다면 다소 불손하고 비종교적인 인물이었지만, 리처드 버튼의 사후 그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전형적인 영국 신사로 거의 날조하다시피한 평전을 내놓았고, 남편이 남겼던 방대한 자료들은 모조리 태워버렸다. (출처 : 「Richard Francis Burton」, Wikipedia)


리처드 애덤스와 『워터십 다운』
 리처드 애덤스는 원래 창작과 무관하게 살던 공무원이었다. (훗날 농림부 차관보까지 역임. 83년에는 군소 정당의 후보로 영국 총선에 출마하기도 함. 당선에는 실패한 듯) 어린 딸들에게 밤에 동화를 읽어주던 어느 날, 자신이 읽던 작품이 너무나도 형편 없자 "차라리 내가 쓰고 말겠다"며 격분했고, 딸들은 "말로만 하지 말고 정말 한번 써보라"며 부추겼다. 그래서 평소 이에딸들에게 들려주던 토끼 이야기를 정리하여 출간했는데, 이것이 세계 최고의 걸작 동물 판타지인 『워터십 다운』이다. (출처 : 리처드 애덤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사계절출판사)

다만 집필 당시에는 출판사들로부터 모조리 거절당해 영세한 출판사에서 겨우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출판사가 어찌나 영세했던지 리처드 애덤스는 선인세조차 받지 못했을 지경이다) (출처 : 「Watership Down」, Wikipedia)

나남에서 나온 『워터십 다운』은 사실 팬인 고등학생이 혼자 번역한 것이다. 이 번역자는 토끼들의 이름(모두 식물 이름이다)을 번역해서 사용했지만 훗날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번역본에서는 이 이름들을 모두 음역했다. (ex: blueberry →블루베리)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그는 팬들이 보내준 편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장을 한다며, "펜레터에 답장하지 않는 사람은 작가로서의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참고로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화도 된 바 있어서 전세계에 팬층이 걸쳐 있다. (출처 :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사계절출판사)


마르셀 에메
 
마르셀 에메의 단편집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출간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따랐다. 원래 이 단편집에는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그 중 「사반느」는 이미 이문열이 『세계명작산책』에 수록했기 때문에 수록할 수 없었다. 여기에 '프랑스사에 대한 교양이 없으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라는 상당히 수상쩍은 이유로 4편의 작품이 추가로 빠졌다. 결국 남은 것은 5편의 반쪽짜리. 작가의 팬으로서 오래전부터 에메 단편집을 내길 바랐으나 이 단편집 때문에 기획을 포기해야 했던 모 번역자는 이 단편집의 모양새를 보며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마르셀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문학동네)


마르셀 프루스트와 김창석
 
프루스트의 난해한 소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본은 세 가지가 존재하는데, 모두 김창석 씨의 번역이다. 맨 처음 번역은 85년에 정음사에서 나왔는데, 이 원판이 출판사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해 모조리 소실되고 말았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역자는 70이 넘는 나이에 다시 번역 수정 작업을 하여 2년 만에 새로운 완역본을 내놓았다. (출처 : gksrud, 도서갤러리)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은 당대에 대중 소설가였던 인물이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싸구려 대중 소설로서 읽혔다. 그의 인기 대부분은 당시 유행하던 작가들의 낭독회에 마크 트웨인이 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크 트웨인은 강연으로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고 전한다. (출처 :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마크 트웨인이 작가로 데뷔하기 전 젊은 시절에 키잡이로 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사실 마크 트웨인은 22세 때 증기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보수가 짭짤하다는 키잡이의 꼬임에 넘어가 그 일을 시작했었다. 당시 키잡이의 연봉은 약 3천 달러였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15.5만 달러쯤 되는 금액이다. (출처 : 「Mark Twain」, Wikipedia)

마크 트웨인은 급기야 동생까지 꼬셔서 키잡이 일을 하게 했는데, 이 동생은 근무 중에 일어난 증기선 폭발 사고에 휘말려 죽고 말았다. 스무살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일어난 사고였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예지몽을 통해 동생의 죽음을 예견했었던 마크 트웨인은 깊은 충격에 빠졌고(설상가상으로 마크 트웨인은 지독한 신비주의자였다) 평생 동안 자동생의 죽음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죄책감에 묻혀 살았다. 그래도 키잡이 일은 여전히 계속했다. 마크 트웨인이 키잡이를 그만두는 건 남북전쟁으로 인해 미시시피 강 교역이 예전같지 않게 된 뒤의 일이다. (출처 : 「Mark Twain」, Wikipedia)

마크 트웨인은 작가로서 잘 알려지게 된 후 한 지역 신문사의 후원으로 지중해 여행을 가게 되었다. 배를 타고 여행하던 중 그는 찰스 랭던이라는 청년과 사귀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 누이의 사진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몇 개월 뒤 찰스 랭던이 마크 트웨인을 만찬회에 초대하였다. 만찬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자 마크 트웨인은 마차에서 굴러떨어져 중상을 입은 척 하며 2주 넘게 랭던의 집에 머물러 그의 누이에게 계속하여 구혼했다.
처음에는 계속 퇴짜를 맞았지만 17차례에 걸친 도전 끝에 결국 승락을 얻어냈고, 그는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 후에는 지극한 애처가로 살았으며, 훗날 아내가 중상을 입어 잘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자 집 안뜰의 나무마다 "새들아. 울지 말아라. 사랑하는 아내가 이제 잠을 자고 있다."라는 글귀를 써 붙였다고 한다. 아내가 사망한 뒤에는 아내를 애도하는 뜻에서 흰 모자, 흰 양복, 흰 구두로 차려 입고 다녔고, 이것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출처 : 「Mark Twain」, Wikipedia)


마키아벨리

피렌체 시 근교에 있던 마키아벨리의 별장은 현재 세리스트리 백작 가문의 소유이다. 이 가문은 마키아벨리의 후손인 모 여인의 재혼처라는 인연으로 별장과 그 부속 농원을 상속했으며, 현재는 마키아벨리의 옆 얼굴을 상표로 하는 포도주를 팔고 있다. (출처 : 시오노 나나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한길사)


모리스 르블랑
모리스 르블랑은 『아르센 뤼팽』시리즈에 홈즈와 뤼팽간의 대결을 그렸지만 사실 원작자인 아서 코난 도일의 허락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셜록 홈즈』시리즈를 읽어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출처 : 정규웅, 『추리 소설의 세계』, 살림)


시마 유키오

군국주의자인데다 탐미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 그는 평소 할복을 동경하여 할복 장면을 미화한 단편 「우국」을 쓰기도 했다. 그는 과연 할복으로 죽었는데 이 때의 광경은 그가 꿈꿔왔을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일단 미시마 유키오 그 자신은 배를 찌른 뒤 너무 아파 배를 다 긋지도 못했고, 옆에서 가이샤쿠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이는 지나치게 떨어 일본도로 목을 몇 번이나 내려치고도 목을 베는데 실패했다.


미하엘 엔데와 차경아

1977년, 한국에서 차경아 씨의 번역으로 첫 소개된 『모모』는 그야말로 밀리언셀러라 할만한 상업적 성과를 거둔다. 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는 이후 독일에도 알려져 미하엘 엔데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하엘 엔데는 차경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담은 편지를 보냈고, 그 이후로도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후일 미하엘 엔데는 차경아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며 『끝없는 이야기』의 경우는 아예 구상 단계부터 차경아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다. (워터가이드)

한편 『모모』는 원래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였으나 부도 위기에 처해 있던 출판사를 회생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경영난에 고심하던 청람출판사 사장(해직기자 출신)에게 『모모』를 번역해보라고 권한 사람이 바로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차경아 씨였다. (asdf, 「삼순이, 김만준, 차경아, 이오덕..」, Daum)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는 엄청난 연극광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좋아했다. 그는 김나지움 시절과 대학 시절을 통틀어 40차례 이상 관람했을 정도였고, 불가코프의 책상 앞에는 키예프의 유명한 베이스 시비랴코프가 메피스토펠레스로 분한 사진이 '꿈은 때로 현실이 된다'는 의미심장한 구절과 함께 걸려 있었다고 한다. 대표작 『거장과 마르가리타』도 무수한 개작을 거치기 전의 초기 원고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닮은 악마 '볼란드'가 주연이었다.

박영창
소설가 박영창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의 소설 『무림파천황』은 알아보는 무협 독자들이 제법 될 것이다. 한국 무협 소설사에 전무후무할 '필화' 사건의 주인공이기 때문. 무협 소설가 박영창은 원래 연세대 신학과 학생으로, 무협 창작은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다. 당시 운동권으로 활동하고도 있었던지라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고 5공화국이 출범한 뒤 『무림파천황』에 사파와 정파의 투쟁을 변증법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을 넣었는데, 나중에 작가가 다른 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갔을 때 안기부에서 증거가 될 것을 찾다가 그 대목에 주목한 모양. 그래서 졸지에 한국 무협소설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필화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 소설에 "강북무림" 이 "강남무림" 에 대해 "남진" 을 주장했다는데 이게 북한의 남진을 연상시켰다고도 한다. (「무림파천황」, 엔젤하이로 위키)


반다인과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본래 문예비평가였던 라이트는 장르 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문예비평에만 집중하던 그가 추리소설을 접한 것은 1차 대전 후 입원한 정신병원에서 허용된 읽을 거리가 대중 소설 뿐이었기 때문이고 집필 활동에 들어선 것은 그의 비평서가 통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미스터리 작가들이 자신에 비해 (장르에 대한) 경험이나 연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는게 자신의 비평가로서의 명성을 훼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S. S. 반다인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그의 미스터리 소설은 데뷔작부터 엄청난 호응을 모았고, 애초에는 그 이후로 미스터리 소설을 쓰지 않으려 했던 반다인은 결국 도합 12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남겼다.

그는 아직 자신이 추리 소설가 S.S.반다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 서점에 들렀다가 점원의 강권에 따라 자신이 쓴 책을 자기 돈을 주고 산 적이 있다.

훗날 추리 소설가 S. S. 반다인이 문예 비평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라는게 밝혀졌지만, 그러고 난 뒤에도 그의 문예 비평서는 여전히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S. S. Van Dine」, 하우미스테리)


발자크
발자크를 혹평했던 동시대의 소설가 상트 뵈브가 『애욕』을 출판했을 때 발자크는 이를 갈며 "애욕을 내가 다시 한번 써보이겠다"며『골짜기의 백합』을 출판했다. 그의 의도대로 『골짜기의 백합』은 세계명작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애욕』을 아는 일반 독자는 거의 없다.

그는 지독한 커피 마니아로, 어느 통계학자는 그가 평생 마신 커피의 양이 5만 잔도 넘으리라고 추산했다. 


배명훈

SF 소설가 배명훈은 창작 SF계 안에서만 따지면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데뷔한 사람이다. SF뿐만 아니라 장르문학 작가들 사이에서는 평소 장르문학 팬덤에서 활동하다가 웹에서 연재를 시작한 후 인기를 얻어 출판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는 공모전에 당선되어 잡지 연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출판을 하게 되는 코스를 밟았다. 어찌보면 문단 작가들이 주로 밟는 코스를 밟은 셈이다. 사실 그는 SF팬덤의 존재를 모르고서 거의 혼자서 글을 써왔다고 한다.

SF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004년, 학부 재학 시절 대학문학상에 제출했던 단편 「테러리스트」의 심사평에 SF 운운하는 구절이 있는 걸 보면서부터이다. 그제야 자신의 소설이 SF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실은 테러리스트도 그나마 장르문학 냄새가 덜 풍기는 것 같아 내본 글이었다고 한다)

한편, 당시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정소연은 당초 SF가 나름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하여 대학문학상에도 SF 단편을 낼 생각이었으나 「테러리스트」가 뽑힌 걸 보고는 판타지로 선회하여 「마산 앞바다」로 대학문학상 가작을 타게 된다.

『타워』 출간 이후에는 이와 관련된 인터뷰, 간담회 등을 무려 20여 차례나 했으며, 이로 인해 어떤 행사에 가건 나올법한 질문들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앞서 이야기했듯) 자신이 SF팬덤 사이에서 성장한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SF 팬덤 외부에서 준비한 행사에 가면 마치 한국 SF를 대변하는 작가로 취급되고, 자신의 작품보다는 한국 SF 전반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신의 작품 중 우주선 발사 장면이 나오는 작품에 대하여 "혹시 나로호 발사에서 영감을 얻으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던 사례를 거론하며 SF에 대한 세간의 몰이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법정과 정채봉, 『샘터』
 
정채봉 선생이 샘터 편집부를 이끌던 시절, 여느 때처럼 법정 스님의 글을 받아와 실었는데 그만 편집 실수로 가인쇄본에서 오자가 하나 발생했다. 가인쇄본을 받아 본 법정 스님은 샘터사에 전화를 걸어 다시는 글을 안 주겠다고 호통쳤고, 정채봉 선생은 당장 인쇄를 멈추고 스님이 계신 산골 암자로 달려가 밤새 용서를 빌었다. 법정 스님은 그 정성에 감복하여 노여움을 풀었고, 정채봉 선생 이하 편집부에서는 그날 이후 가인쇄본 단계마저 단 하나의 오자도 허용치 않았다고 한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베르길리우스 

베르길리우스는 미완성 서사시 『아이네이스』로 로마의 시성이라고까지 불렸지만 그의 명성이 중세까지 이어진데는 외부적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에는 기독교에 대한 반대파들을 설득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로마의 서사시들이 기독교 문학(?)으로 날조되었는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런 식으로 인용하기를 가장 즐겨한 작품이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중 특정한 문장만을 뚝 떼와서는 그 구절이 예수의 탄생을 예견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출처 :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이런 황당한 날조로 인해 베르길리우스는 중세에 마법사 내지 예언자로 여겨졌고, 콘스탄티누스식 해석을 오락으로 승화한(?) '베르길리우스 점'이라고 하는 오락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 점은 『아이네이스』를 아무 페이지나 펼쳐둔 후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나온 숫자를 합산한 수의 행에 있는 문장을 토대로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는 장난이었다. (출처 :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단테가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저승의 안내자로 설정했던 것도 이러한 대중적 인기 덕분이다. (출처 : 「신곡」, 엔젤하이로 위키)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로 80년대 후반의 한국 문단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복거일. 그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이게도 등단을 내지 않고 곧바로 문학과지성사라는 거물 출판사에서 책을 내었는데, 이 과정에서 비평가 김현이 큰 역할을 했다 한다. 복거일 자신은 이 일을 두고 "답안지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했는데 글이 뛰어나다고 해서 장원으로 뽑아 준 당나라 시대 일"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문학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상당히 달랐고, 그에 따라 자주 충돌을 했지만 복거일 쪽이 김현의 은혜를 잊지는 않았다고. 훗날 복거일은 어머니의 임종 장면도 보지 못한 채 김현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한다. 다만 이 부분은 '미담'으로 보기에는 좀 애매하다. 당시부터 문지가 누렸던 문단 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니까. (출처 : Cato,「[라이벌] 복거일과 김현: 주류경제학에 근거한 소설가와 정신분석 중심 인문주의 평론가의 관계에 관한 잡담」, 듀나 게시판)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를 쓴 브램 스토커는 최초의 남성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여권 운동과 사회 사업에 열중한 작가였다. 교사로서 일을 하며 타자기, 녹음기 등 '최신 문물'의 사용에 능했던 미나 하커는 당시 신여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녀는 프랜시스 드 코폴라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출처 :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열린책들)

스토커의 사후 『드라큘라』가 인기를 모으면서 『드라큘라』를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다시 쓰거나 각색하고자 하는 시도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브램 스토커의 부인인 플로렌스 스토커가 보여준 가공하리만큼 맹렬한 투쟁에 의해 대부분 저지되었다. 플로렌스 스토커의 생존 당시에 살아남은 '해적판'은 터키에서 『드라큘라』의 내용을 그대로 배껴다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꿔서 출간했던 작품 뿐이었다. 이 작품이 살아남은 것은 터키어로 쓰여진 탓에 플로렌스 스토커가 그 존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듣보잡이었다. (출처 : 장 마리니, 『드라큘라』, 이룸)

사드
 『소돔 120일』이라는 골때리는 소설의 저자를 배출한 사드 후작 가문은 본래 프로방스 지방의 유명한 귀족 가문이었다. 물론 문제의 사드 후작이 출현한 이후로 이 가문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유명해졌다...

생애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내다 사망한 사드 후작의 유언장에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달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출처 : 조유선, 『도스또예프스끼 읽기 사전』, 열린책들)


사무엘 리처드슨
 
18세기의 영국 소설가 리처드슨은 목공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17세부터 생계에 뛰어들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편지를 쓰기 좋아해 이웃 처녀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곤 했는데, 이 경험을 살려 쓴 처녀작이 서간체 소설 『파밀라』다. 이 작품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리처드슨은 성공적인 작품 활동을 벌인 후 만년에 숭배자들에게 둘러싸인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 (출처 : 조유선, 『도스또예프스끼 읽기 사전』, 열린책들)


세르반테스
 원래 『돈 키호테』의 2부는 현재 발표된 내용보다 훨씬 방대한 작품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부의 출간 후  『돈 키호테』의 인기를 업은 가짜 후속작이 나도는 것에 격분한 세르반테스는 이미 집필된 원고를 활용하여 급히 2부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세르반테스는 당초의 집필 계획을 상당히 많이 수정해야 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이 2부 초반에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돈키호테가 어떤 노부인이 『돈 키호테』 후속작을 읽고 돈키호테가 더이상 둘시네아 공주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고 하는 걸 듣고는 분노하여서 원래 가려고 했던 루트를 따라가지 않고 소설과 다른 길을 택하게 된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 2부를 출간한지 1년 만에 사망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해적판으로 인해 빨리 작품을 써야 했던 것 자체가 독자들에게는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셀마 라게를뢰프
 
스웨덴 최초이자 여성작가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닐스의 모험』은 사실 당시 교사였던 작가에게 스웨덴 교육부가 의뢰하여 만든 교육용 책자다.


소로
 
『월든』과 『시민 불복종』을 써낸 헨리 데이빗 소로는 월든 호수가에 지은 통나무집에 외롭게 지낸 것처럼 책을 썼지만 실은 돈 많고 부유한 바로 근처의 부모님집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밥먹고 친구와 놀며 할 짓 다 하면서 지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소포클레스
그리스 비극 3대 작가 중 하나인 소포클레스. 노년이 되어 성욕을 못느끼니까 아쉽지 않냐는 말에 "무슨 끔찍한 말을!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나는 이제 막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왔는데!"라고 말했다한다. (출처 : 「소포클레스」, 엔젤하이로 위키)


스타니스와프 렘
폴란드의 SF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공산권 국가에서 나고 자란 탓에 무수한 곤욕을 치뤄야 했던 사람이다. 태어나기는 유복한 유태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한 뒤에는 "부르주아 출신 성분"이 문제되어 다니던 과학 기술 전문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다. 유명 의사였던 아버지의 연줄로 어떻게 의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 때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는 바람에 공문서를 위조하여 유태인임을 숨기고는 용접공으로 일해야 했다. 

종전 후에는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다시 의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과학계를 좀먹어가던 리센코주의에 반발하여 군의관 복무를 거부하는 바람에 의대 졸업 시험에도 떨어졌다. (리센코주의의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소위 '리세코 농법'이다. 후천적으로 습득한 형질도 유전된다 하여 볍씨를 찬물에 담갔다가 심게 한 소위 '리센코 농법'은 소련 과학계 희대의 삽질로 평가된다) 

이후에는 주로 작가로서 활동하였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는가 하면(결국 수년 뒤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좀 더 적합한 후속편을 쓰고서야 출간했음) 써놓은 소설에 공산 국가의 '영광된' 미래에 대한 찬양을 넣으라고 강요당하기도 했다. 훗날 스탈린주의가 퇴색하여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게 된 뒤에는 자신의 초기작에 대한 혹평을 쏟아내며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은' 미국 SF에 대해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미국 SF 작가들은 SF의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라고 했다지만 사실 이는 좀 점잖은 표현에 속한다. 특히, 영 좋다 말하기 어려운 소설들만 양산해댔던 할란 엘리슨 같은 작가들을 거론하며 미국의 SF 작가들은 아이디어나 새로운 문학 형식에 탐구하기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다는 혹평까지 내렸다.

이 독설가가 인정한 미국 SF 작가는 오직 필립 딕 뿐이었다. 그는 필립 딕이 쓴 문학비평집을 보고 필립 딕에 꽤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필립 딕은 렘이 공산당에게서 미국의 여론을 장악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렘에 대해 FBI에 서한을 보내기까지 했다.


시릴 콘블루스
시릴 콘블루스는 독학하여 작가가 된 사람으로,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한 작품의 소재도 백과사전에서 구하였다. 이를테면 발리스타ballista라는 항목을 본 뒤 이 고대 로마군의 투석 병기에 대한 단편을 쓰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편집자는 그가 가져온 단편을 보면 그가 백과사전의 어느 부분을 읽는 중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W)

SF 소설가 시릴 콘블루스는 어디선가 "진정한 작가란 블랙 커피를 마신다"라는 이야기를 주워 듣고, 자신도 블랙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초 그가 블랙커피를 몹시 싫어했다는 점이다. 그의 입맛에는 블랙 커피가 너무 써서 도저히 블랙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콘블루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처음에는 블랙 커피에 프림을 엄청나게 많이 타서 마시다가 조금씩 프림의 양을 줄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맛을 길들여서, 결국 블랙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W)

콘블루스를 담당했던 편집자 프레데릭 폴에 따르면 콘블루스는 이를 전혀 닦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이가 말 그대로 녹색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고심하던 콘블루스는 이를 닦는 대신, 말을 할 때마다 손을 들어 입을 가리는 습관을 들이는 걸 택했다. (W)


아가사 크리스티
아가사 크리스티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견습 약사로 일하면서 최신 독약을 다루는 일을 맡았다. 당시 배웠던 독소 취급법은 그 후 크리스티가 쓴 미스테리 소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출처 : decca, 「Agatha Christie」, 하우미스테리)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염세철학의 대가로 알려진 쇼펜하우어. 그러나 그자신은 매일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고 손주들과 즐겁게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으며, 말년에는 밀려드는 명성의 영광 속에 매우 적극적이고 건강하고 해피한 삶을 살았다. 사실 쇼펜하우어가 진정 싫어했던 것은 인생이 아니라 '여자의 수다'로, 이웃집 여인이 지나치게 수다를 떤다는 이유로 2층 창문 밖으로 여자를 집어던져버리기도 했다. (gksrud, 도서갤러리)


아서 코난 도일
 코난 도일이 소설 창작에 전념하게 된 것은 순전히 본업인 의사 일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업 작가로 돌아선 다음에도 코난 도일이 전념했던 분야는 역사 소설이었다. 사실 아서 코난 도일은 자신이 추리 소설 작가로 여겨지는 것을 끔찍히 싫어했다.

코난 도일은 집필 초기인 1891년부터 셜록 홈즈를 죽여버리고 싶어했다. (셜록 홈즈의 '죽음'이 미루어진 것은 어머니의 만류 때문이었다) 결국 「마지막 사건」이란 단편을 통해 셜록 홈즈를 죽이는데 성공했을 때는 아내 루이즈가 결핵에 걸려 있었다. 이 때문에 도일이 셜록 홈즈 시리즈를 중단하려 했던건 스위스에서 아내의 병구완에 집중하고자 했던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사실 도일은 루이즈와 결혼한 1885년에 이미 14년 연하의 지인 래키와 사랑에 빠졌었고, 1906년에 아내가 사망하자 1년 뒤에 재혼했다. 첫 아내와의 결혼 기간 중에는 아내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래키를 적당히 멀리 했다고 한다. (출처 : 「Arthur Conan Doyle」, Wikipedia)

다만 첫째 아내 사이에서 낳은 딸은 심각할 정도의 차별을 받았다.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로 인해 막대한 재산을 벌여들였지만 이 딸에게는 한 푼도 남겨주지 않았고, 학교도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이 딸은 평생 여기저기를 떠돌며 하녀로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런던 경시청에서는 잭 더 리퍼 사건의 해결을 위해 아서 코난 도일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도일은 이에 응했지만 범인의 추리에는 실패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시리즈 연재 도중 홈즈를 죽여버린 유명한 스캔들이 일어났을 때,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격렬했다. 이를 항의하는 편지가 전세계에서 쏟아진 건 물론이고, 런던 시민들은 검은 상장을 단 채 코난 도일의 집 앞에서 "홈즈! 홈즈!"를 연호하였다. 심지어 코난 도일이 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검은 상장을 단 노부인에게 지팡이로 얻어맞을 뻔한 일도 있을 정도. 이러한 소동은 무려 8년 동안 지속되었고, 결국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의 연재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 「코난 도일」, 엔젤하이로 위키)

코난 도일은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와 절친했는데 그 둘은 공동으로 오페라 가사작업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배리가 초안을 잡고 완성시킨 1막을 본 코난 도일은 '너무 진부하고 어설퍼서 크게 실망했다.'고 한 후 1막 가사를 새로 쓰고 줄거리를 일부 수정하며, 악보 작곡가인 어니스트 포드와 함께 2막을 썼다. 그러고도 그 오페레타는 완전히 실패했고, 비평가들은 무자비하게 작품을 씹어댔다. 특히 조지 버나드 쇼는 "존경할 만한 두 시민이 공공연하게 범할 수 있는 가장 뻔뻔하고 멍청한 짓거리"라고까지 하였는데, 그럴만하다는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평이었다. (출처 : 「코난 도일」, 엔젤하이로 위키)

코난 도일은 1900년 4월 2일 보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블룸폰테인에 도착 했는데, 그때 블룸폰테인에는 막 4세가 된 존 로널드 루엘 톨킨, 통칭 J.R.R.톨킨이 살고 있었다. 부친인 아서 톨킨이 블룸폰테인 은행장으로 임명 받은 후 그곳에서 톨킨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코난 도일이 7월 6일까지 블룸폰테인에 있었고 은행을 이용한 기록이 남아 있으니 둘의 조우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출처 : 「코난 도일」, 엔젤하이로 위키)

코난 도일이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저택은 코난 도일 사후 더욱 유명해 졌는데 다음과 같은 일 때문이었다. 1960년에 그 집에 새 주인이 된 사람들은 모두 에든버러 의대 출신으로 코난 도일의 후학들이며 그 중 한 사람의 부친은 대학 시절 코난 도일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그 집에서 코난 도일의 귀신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다락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도 했으며 콧수염을 기른 키가 큰 노인이 집 안에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분명 코난 도일의 모습이었다. 그 유령은 빨간 표지에 까만 고무줄로 묶은 일기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1961년 여름에 유령 쫓는 의식을 벌이고 나서야 더이상 유령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직후 코난 도일에게 정말로 빨간 가죽을 씌운 비밀일기가 있었으며 그 일기장이 어디론가 없어진 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처 : 「코난 도일」, 엔젤하이로 위키)

시간과공간사에서 출간된 『셜록 홈즈』전집 후기에는 "번역하면서 저자(아서 코난 도일)의 귀신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에 대해 판갤의 콘라드씨가 사실 여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자, "사실 그대로입니다."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출처 : 콘라드, 「번역가 정태원」)

아이작 아시모프

"세 번, 네 번 작가의 문을 두드려라. 만약 그렇게 하고도 실패한다면, 여러분에게는 작가가 될 자질이 없는 것이므로 대법원장이나 은행장 같은 열등한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던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 그러나 그도 전업 작가로 돌아선 건 인세가 보스턴 칼리지 의대 교수 월급을 넘어선 뒤였다. (출처 : qui-gon, 「아시모프」, 장르작가 데이터베이스)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에는 같이 숨어 있던 아저씨가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거나, 평소 친하던 여자아이에게 서로 가슴을 만져보자는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적혀 있다. 어쨌든 그 소녀는 자신의 일기를 전세계의 사람들이 50년 넘게 돌려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본래 하녀의 사생아였다. 훗날 동화 작가로 유명해진 안데르센은 사교계를 돌며 귀족들과만 교류했고, 어머니의 정체를 숨기는데 급급했다. (gksrud, 도서 갤러리)


알퐁스 도데
교과서에도 수록된 『마지막 수업』이나 『별』같은 서정적인 소설을 많이 썼던 알퐁스 도데. 정열적인 인물이었던 모양인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문학 활동을 했던 아내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를 쓴 기자에게 결투를 신청했었다고 한다. (「알퐁스 도데」, 엔젤하이로 위키)

한편 그의 대표작인 『마지막 수업』은 알고 보면 좀 복잡한 소설. 그 소설의 무대인 알자스 로렌 지방은 원래 독일 땅이었기 때문이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평생 독신이었으며, 가난과 무명 생활로 인한 고통 속에서 시름하다 죽었다. 그의 사후 발견된 방대한 분량의 일기는 유럽 작가들의 관심을 모았고, 그는 죽어서야 일기의 작가로 유명해졌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의 일기』, 바움)


애드거 앨런 포

포의 아버지는 법률을 공부하다 연극에 빠져 배우가 된 사람이었고, 어머니 역시 배우였다. 포의 어머니는 인기를 얻은 반면 포의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고, 실의에 빠진 그는 가족들을 남겨둔 채 행방을 감춰버렸다. (이 때 둘째 아들인 포는 1살이었다) 이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지방공연까지 뛰던 포의 어머니는 남편이 사라진지 1년만에 사망했고, 남은 아들들은 그 도시에 살던 존 앨런 부부에게 맡겨졌다. (출처 : 「Edgar Allan Poe」, Wikipedia)

포의 아내 버지니아는 13세 연하의 고종 사촌 동생이었다. (결혼 당시 포는 26세, 버지니아는 13세) 나보코프가 『롤리타』를 쓰며 가장 많이 염두에 두었던 인물도 포다. (출처 : 「Edgar Allan Poe」, Wikipedia)

평생 불우한 인생을 살다 40대 초엽에 사망한 그의 유언은 "Lord help my poor soul." (출처 : 「Edgar Allan Poe」, Wikipedia)


앤 라이스
 『뱀파이어 연대기』시리즈의 작가가 썼던 이름은 세 가지다. 출생 시의 '하워드 앨런 오브라이언', 초등학교 입학 후 결혼까지 썼던 '앤 오브라이언', 시인 스탠 라이스와 결혼하면서부터 사용하게 된 '앤 라이스'. 초등학교 입학 때 이름이 바뀌었던 건 어린 앤이 '하워드'보다는 '앤'이 훨씬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어린 소녀는 학교에 간 첫날, 수녀가 이름을 묻자 '앤'이라고 대답했고, 곁에 있던 어머니의 묵인에 의해 그 뒤로 앤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뱀파이어 연대기』의 어린 뱀파이어 클라우디아의 모델이 되었던 건 앤 라이스의 딸이다. 앤 라이스는 어린 딸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 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출처 : 「Anne Rice」, Wikipedia)

현재 앤 라이스는 기독교 서적을 쓰는데 몰두해 있다. 그는 뱀파이어물을 쓰던 시기를 사악에 물든 시기로 회고하며, 다시는 뱀파이어물을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출처 : 「Anne Rice」, Wikipedia)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리뷰란에 앤 라이스의 신작에 대한 악평이 쏟아지자 앤 라이스는 이에 대해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론을 올렸다. 이로 인해 시작된 논쟁은 한동안 아마존을 뜨겁게 달구다가 아마존 측의 관련 게시물 삭제로 종결되었다. (출처 : 「Anne Rice」, Wikipedia)

이처럼 앤 라이스가 과거 자신이 썼던 작품들을 부정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호러/판타지 팬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이야기인데, 최근에 들어서는 이보다 한 발 앞선(?)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자신이 처음부터 기독교적인 작품을 썼노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앤 라이스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뱀파이어들을 미화한 적이 없으며, 초기작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의 모습 또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 퍼진 허무주의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W)


앨리스 보샤르트
본인의 명성보다는 그 가족으로 인해 유명한 작가이다. 앨리스 보샤르트는 원래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전기기술자와 결혼하는 등 창작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다. 5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근무하던 병원에서 정리해고당하면서 실직자 신세가 되자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이는 여동생인 '앤 라이스'의 권유 때문이었다. 앤 라이스는 언니에게 저작권 대리인을 주선해주거나 책에 서문을 써주는 등 이리저리 애를 써줬다고 한다. 한국에도 과거 『실버울프』라는 소설이 소개되었지만, 팬터지 목록 2.0의 편자인 김태영 씨의 평으로는 그저 그런 범작이라는 듯.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지독한 거짓말쟁이로, 그와 깊은 우정을 맺으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헤밍웨이의 '그것'은 겨우 2cm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자살에는 '그것'에 대한 컴플렉스도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친구 피츠제럴드가 그에게 자신의 '그것'이 작다며 한탄하자 헤밍웨이는 화장실에서 피츠제럴드의 '그것'을 확인하고는 피츠제럴드를 박물관으로 데려가 그리스 조각들을 보여주며 그의 '그것'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러고도 피츠제럴드가 "우리 마누라가 그러길 나는 물건이 작아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을 거라던데..."라고 하자 헤밍웨이는 "그거야 자네가 바람 못피게 하려고 한 소리고."라고 일갈했다 한다. (출처 : 나귀, 알라딘)


어슐러 K. 르 귄
 르 귄은 《플레이보이》지에 원고를 보냈을 때 저자명이 U. K. 르귄으로 찍히는 걸 보고 짜증을 냈다. 르귄은 이 사건을 "편집자나 출판업자가 나를 여류 문필가로 취급하여 성적 편견을 보였던 내 생애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경우"라고 회상했다. (출처 : 어슐러 르 귄, 『바람의 열두 방향』, 시공사)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나오는 오멜라스라는 지명은 살렘(오레건)[Salem(Oregon)]이라는 표지판을 거꾸로 읽은 데서 나왔다. (출처 : 어슐러 르 귄, 『바람의 열두 방향』, 시공사)

르 귄의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 얼마 안되는 예 중 하나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온 『게드 전기』일 텐데,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0년대 초부터 르 귄에게 어스시 시리즈를 애니메이션화 하고 싶다는 제안을 넣어왔었다. 그런데 이 당시 르 귄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 자체를 잘 몰랐을 뿐더러,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에도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 없었다. 당시 르 귄이 아는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디즈니 사의 작품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여성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인 르 귄으로서는 디즈니 스타일을 도무지 좋아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제안은 퇴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수년 뒤 『이웃집 토토로』를 본 르 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꽤 호감을 갖게 되었고, "어스시 시리즈를 영상화한다면 그 적임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애니메이션에 큰 기대를 품었다. 과연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는 어스시 시리즈의 3,4번째 작품인 『머나먼 바닷가』와 『테하누』를 활용한 『게드 전기』를 찍게 되지만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그의 아들이 감독한 작품이었고.... 르 귄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드 전기』에 대한 상당히 복잡 미묘한 감상을 남겼고, 최근 황금가지의 주도로 이루어진 80세 생일 기념 인터뷰에서는 '배신감마저 느꼈다'고 하였다. 『게드 전기』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도 별반 낫지 않은 꼴이었으니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http://www.ursulakleguin.com/GedoSenkiResponse.html (출처 : 「Ursula K. Le Guin」, Wikipedia)


얼 스탠리 가드너

미국 법정 드라마에서 간혹 이름이 언급되곤 하는 '페리 메이슨'은 미국의 추리 소설가 얼 스텐리 가드너의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명 변호사이다. 그 자신이 21세부터 일찍이 변호사로서 명성을 날렸고, 훗날 작가로서도 유명해진 뒤에는 광활한 저택에서 자가용 기차를 달리게 하고 대형 트레일러로 여행을 하는 등 초호화판 생활을 했던 작가이지만, 쓴 작품의 대부분이 퇴짜를 맞아야 했던 불운한 시기를 겪기도 했다. 어느 출판사 편집장은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 가장 재미없는 소설'이라고 혹평했으며, 작가 자신은 "당시는 원고 불채용 통지 수집가가 된 것 같은 상태였다." 라고 회고했다. (드루리 레인, 「얼 스탠리 가드너, 미스테리 클럽)


엘러리 퀸
 
사실 엘러리 퀸은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두 사촌 형제,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사용했던 공동의 필명이다.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의 어머니는 브램 스토커의 어머니와도 친구였고, 오스카 와일드와 브램 스토커 자신들도 유년 시절부터 꽤 자주 봤던 사이였다. 심지어는 같은 시기에 같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을 다녔으며, 선배 입장이었던 브램 스토커가 오스카 와일드에게 자신이 학회장으로 있던 학회에 들어오라고 권유한 적도 있었다. (W)

오스카 와일드가 구혼했었던 플로렌스 발콤브가 브램 스토커와 결혼하면서 오스카 와일드가 길길이 날뛰기도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의 사이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훗날 오스카 와일드는 『드라큘라』에 대해 "아무 과장 없이 말하지만 『드라큘라』는 19세기의 소설 가운데 가장 멋진 작품이고, 특별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라는 호평을 남겼고, 브램 스토커도 오스카 와일드가 영국에서 추방당해 유럽을 떠돌던 시절, 헨리 어빙을 따라 유럽 투어중이던 브램 스토커가 그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W)

자신을 모델로 한 코믹 오페라의 미국 홍보 대사로 고용되어 미국에 도달했을 때 세관에 "내 천재성 외에는 아무 것도 신고할 게 없다"라고 답한 일화가 유명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남자 애인과 향락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W)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무명의 변호사였던 괴테가 독일을 대표하는 문호로 크게 된 데는 그가 25세에 발표했던 서간체 연애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영향이 컸다. 당대의 이성 중시 풍조에 반하여 감성의 가치를 역설했던 이 작품은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으며 괴테를 인기 작가로 만들어놓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주인공 베르테르의 복식을 흉내내어 입고 다니거나 실연한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흉내내어 자살을 하곤 했다는 사실은 워낙에 유명하다. 젊은이들 뿐만이 아니라 작센-바이마르 대공이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이 작품의 애독자였다. 작센-바이마르 대공은 이 소설을 본 뒤 괴테를 불러다 최측근으로 삼았고, 나폴레옹은 훗날 괴테를 만났을 때 자신이 본 판본의 오탈자를 지적할 정도였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열린책들)

그런데 괴테 본인은 자신의 작품이 누린 인기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이었다. 특히 베르테르를 흉내낸 모방 자살이 이어져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 책을 금서 처분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을 때는 "이 작품은…… 그나마 약간 남아 있던 희미한 빛마저 완전히 불어 끄는 것 말고는 더 나은 할 일이 없었던 얼간이와 건달 몇 명을 이 세상에서 없애 주었을 뿐입니다. 귀하는 이런 작가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그 작품을 비난할 생각이십니까?"라고 할 정도였다. 이는 사실 괴테가 말년에 이르러서까지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의 벗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말년에도 괴테를 찾아온 팬들 중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외에 괴테가 쓴 작품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도 허다했고, 노년의 괴테에게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만 자꾸 물어댔다. 이 작품이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점은 당대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 또한 괴테를 거북하게 한 요소였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열린책들)

그렇지만 프리드리히 니콜라이라는 작가가 이 작품을 패러디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패러디 소설을 썼을 때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격분했다. 이 소설은 결말 부분에서 베르테르에게 닭 피를 수혈받아 살아나고, ~에게서 샤를로테를 양보받은 후 '감성에 대한 찬양'을 젊을 때의 혈기로 흘려보내고 '견실한'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괴테는 『크세니엔』이라는 시집에 그를 풍자하는 시를 넣는 걸로 응수했다. 그 풍자 수준은 시집의 공동 저자이자 괴테의 절친한 벗인 실러마저도 좀 자제하라고 할 정도였지만, 괴테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만년의 걸작인 『파우스트』에까지도 그를 풍자하는 구절을 넣었다. 당시 테겔 지방의 훔볼트 저택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떠돌자 니콜라이는 그러한 환각이 보이는게 뇌의 울혈 때문이며 자신도 엉덩이에 거머리를 붙여 방혈함으로서 치료했다는 경험담을 강연하고 잡지에도 발표하여 때문에 낭만파 문인인 티크에게 조소당했었는데, 이에 괴테는 『파우스트』에 '엉덩이 마술사'라는 캐릭터를 집어넣었다. (W)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는 원래 의학을 전공하고자 했다. 옥스포드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각막염으로 눈이 나빠지자 생물학을 공부했고, 나중에 눈이 멀어버릴 지경이 되자 그제서야 문학을 시작했다. 그는 작품 활동을 위해 보지 않고서 타자기를 사용할 수 있게끔 연습했다.

올더스 뿐만 아니라 헉슬리 가문은 본래 천재 가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브리태니커 사전에도 헉슬리 패밀리라는 항목으로 등재) 이 '헉슬리 패밀리'의 일원에는 다윈의 옹호자로서 다윈 대신 창조론자의 공격을 막아냈던 토머스 헨리 헉슬리, 과학자이자 유네스코 초대 사무국장인 줄리안 헉슬리,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앤드류 필링 헉슬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겨우 2,3세대 안에서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출처 : 다치바나 다카시, 『뇌를 단련하다』, 청어람미디어)


위다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이 배경인 소설 『플랜더스의 개』를 썼지만 작가 본인은 영국인이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보여준 대로 개를 생전에 무척 좋아했으며, 한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로는 독신으로 지내면서 여러 마리의 개들과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출처 : 「위다」, 엔젤하이로 위키)

한편, 위다의 대표작인 『플랜더스의 개』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건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던 일본과 한국 정도로, 정작 벨기에에서는 그리 평가가 좋지 못했다. 이는 원작에서의 네로가 자립하기 충분한 나이로 설정된데다 결말이 거의 자살에 가깝게 끝나기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8세 정도에, 기아와 저체온증이 겹친 죽음) 여기에 벨기에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비정하단 말이냐!"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다만 이 작품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이 하도 많이 오는지라 관광상품으로는 나름 알려진 편이라고. (출처 : 「위다」, 엔젤하이로 위키)

윌리엄 골딩

골딩의 대표작인 『파리대왕』은 사실 건전한 동화, 『산호섬』(1857)을 패러디한 작품이지만 현재 『산호섬』을 아는 독자는 거의 없다. 한편 SF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이 『파리대왕』의 출간 이듬해인 1955년에 발표한 『하늘의 터널』은 이 『파리대왕』의 역패러디이다. (「파리대왕」, 엔젤하이로 위키)

유진
『춤추는 자들의 왕』의 작가인 유진은 한 때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근무 중일 때는 일에 바빠 소설을 퇴고하지 못했고, 결국 퇴사한 이후에야 퇴고를 마쳤다고. (출처 : 황금가지 김준혁 편집장 등)


이경영
이경영의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창작 관련)에서 활동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이경영이 글을 쓰는 방식은 참으로 지독했다고 한다. 담배를 잔뜩 사서는 골방에 들어가 그걸 모조리 태울 때까지 글만 쓰는 것. 그런 지독한 글쓰기의 산물이 바로 『가즈 나이트』 시리즈이다.


이문구
 
오늘날 소설가 이문구의 대표작은 『관촌수필』이 꼽히지만, 사실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잘 팔렸던 소설은 『매월당 김시습』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매월당 김시습』은 이문구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그답지 않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이문열
 
이문열의 아버지는 대지 200평에 40간 짜리 본가를 둔 천석꾼에다 영국 유학까지 다녀 온 뒤 서울대 농대 교수를 지낸 엘리트였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주의자 진영의 거물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월북하면서 집안의 가세는 기울었고, 이문열은 초등학교 이후의 학력은 모조리 자퇴로 점철되어 있다. 한 때는 건달 생활을 했을 정도. 훗날 작가로 유명해진 이문열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자 보수 진영은 그를 빨갱이(!)로 몰았고, 이문열은 국보법을 옹호하는 글을 몇 편 더 쓴 후에야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전성기를 달리던 이문열이 90년대 들어서 망가진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이전부터 대하 소설을 쓰려 했던 이문열이 갓 탈고한 첫 대하 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그 원고를 분실하는 바람에 충격에 빠졌다는 설. 두번째는 원래 이문열이 발표하던 소설은 모두가 젊은 시절에 써놓은 습작 원고였는데 90년대 들어서면서 그 습작의 재고가 서서히 떨어졌다는 설. 물론 두 설 모두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는 가십거리일 뿐이다.


장 마르칼 

국내에는 아서왕 전설에 관한 문헌을 집대성한 저작인 『아발론 연대기』로 알려진 장 마르칼. 켈트 문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는 그의 저술 활동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분분하다. 다만 서양 학계에서는 거의 무시되거나 조롱받는 수준인 듯 하다.

Guyonvarc'h라는 켈트 학자는 장 마르칼을 두고 "고전문학 교수라고 자칭하지만 어디서 가르치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으며" "그리스어는 제대로 악센트를 붙이지 못하고 라틴어는 아무것도 모르며 켈트어에 이르면 어형변화가 몇 개나 되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켈트 서사시'가 사실적인 해석을 포함하거나 가장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주석을 택하는 것처럼 구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재야 사학자들이 학계에서 비판을 받는 것이야 드문 일은 아니지만 - 일본 사학계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그렇듯이 - 장 마르칼의 경우는 86년에 표절 사건도 일으킨 바 있어 그 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그도 2008년 11월 23일에 사망하여, 지금은 고인이다.  (출처 : 「Jean Markale」, Wikipedia)

『장미 이야기』
중세 기사도 문학 최대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장미 이야기』는 원래 기욤 드 로리스가 4,000행 정도로 쓴 별볼일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후대의 장 드 묑이 이어 써서 21,000행 정도로 완성했고, 오늘날 『장미 이야기』에서 훌륭하다고 격찬되는 부분 또한 이 장 드 묑이 쓴 부분이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그러나 한국에 출시된 번역본은 기욤 드 로리스가 쓴 부분만 번역했다. (그것도 영역 중역본이다!)


잭 런던과 장 주네, 토마스 말로리, 백민석
 
※ 말로리와 백민석의 사진은 못 구함) 『야성의 외침』을 쓴 잭 런던은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돌봐야 했다. 험한 일을 주로 했던 그는 거의 건달과 같은 생활을 했지만, 다시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작가가 되고 나서는 그런 생활을 모두 청산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반면 장 주네는 천재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고 나서도 도둑질을 비롯한 범죄를 멈추지 않았고, 종신형을 받은 그를 구하기 위해 사르트르나 보부아르 같은 문인들이 대통령에게 탄원을 넣기도 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아서왕 전설을 총결산한 걸작인 『아서왕의 죽음』을 14세기에 썼던 토마스 말로리는 귀족이면서도 주거침입, 강간, 절도, 암살 시도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되곤 했던 악한이었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이런 작가들에 비하면 약간 부족한(?) 감이 있긴 하지만 그에 가까운 한국 작가도 있다. 백민석은 서울 예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중국집 철가방을 지냈다. (현재는 절필)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정비석

화려한 문체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 정비석. 대중적 인기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여 일흔을 넘긴 뒤에도 『소설 손자병법』을 비롯하여 총 14권 분량의 글을 썼다. 하지만 그런 인기에 비해서는 그리 부유하게 살지 못한 편인데, 이는 그가 번 돈이 거의 암에 걸린 아내의 치료에 쓰였기 때문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페미니즘 SF를 쓰고자 했던 작가는 여럿 되지만 그 중에서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만큼이나 독특한 사람은 드문 편이다. 일단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이름은 필명이며, 그 본명은 엘리스 셸든이었다. 1915년생인 엘리스 셸든은 어렸을 때부터 탐험가인 어머니를 따라 오지를 많이 여행하였고, 성장해서는 미 공군과 CIA에서 근무하는 등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조금 독특한 경험들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40대 중반이 되어서 처음으로 SF를 발표하면서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남성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고, 자신의 정체는 철저하게 숨기고자 했다. 다만 동료 작가들과의 서신 교환은 즐기는 편이었는데, 이 당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보냈던 편지에는 어느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는 둥, 나이가 들으니 근력이 없어져서 죽겠다는 둥 중년 남성스러운 멘트들이 가득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어찌나 예민하게 굴었던지 페미니즘 SF 작가 진영의 일원인 어슐러 K 르 귄이 '당신을 네뷸러상 후보로 추천했다'는 편지를 보내자 'No!'로 시작하는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는, 르 귄 입장에서는 꽤나 당혹스러웠을 일화도 있다.

당시 SF 팬덤계에서는 이토록 베일에 싸인 작가의 성별이 무엇이냐 하는게 꽤나 중요한 토론거리였다. 당시 SF계에서 쓸만한 페미니즘 SF 소설을 내는 작가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남성 작가로서는 사무엘 딜레이니 같은 게이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같은 멀쩡한(?) 남성 작가가 그처럼 과격하고도 완성도 높은 페미니즘 SF를 쓴다는 사실은 당시 남성 SF 작가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소설은 어정쩡한 타협을 시도했던 어슐러 르 귄보다는 훨씬 앞선 것이었다) 『두개골의 서』를 쓴 로버트 실버버그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단편집의 서문을 쓰면서 "이 작가는 절대 여성일 리 없다"라고까지 강변했던 것은 그 당시 SF 작가진들의 바람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자 했던 제임스 팁트리의 성별이 까발려진 것은 전혀 뜻밖의 사건에서였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어머니는 유명한 아프리카 탐험가였는데, 아프리카 탐험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한동안 편지 교환을 중단하였는데, 편지 교환을 재개하면서 어느 팬잡지에 이를 설명하는 글을 보냈다. 그러자 그 신문의 편집자가 신문 부고란을 뒤져서 문제의 부고 기사를 찾아내었고... 거기에 자녀라고는 엘리스 셸든이라는 여성 한 명 뿐이라고 적힌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성별이 만천하에 공개될 위기(?)에 처하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고민 끝에 동료 작가 어슐러 르 귄에게 자신이 60넘은 할머니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 소식을 접한 르 귄은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사실 난 당신이 게이인 줄 알았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라며 기뻐해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성별이 공개된 것에 대한 파장은 엄청났다. 로버트 실버버그처럼 그가 남성임이 틀림없다고 공언했던 작가들은 엄청난 망신을 당했으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예로 들며 '남성도 제대로 된 페미니즘 SF를 쓸 수 있다'며 강변하던(혹은 위안삼던) 작가들 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SF계 내에서 '남성에 의한 페미니즘 SF'란게 가능한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어버렸다.

어쨌거나 SF문학사적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작가이건만, 불행히도 한국에 소개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인세가 워낙에 비싸기 때문인데, 그 덕에 한국에서는 『세계여성소설걸작선』, 『판타스틱』(2008년 12월호) 등을 통해 단편들만 간간히 소개되었을 뿐이다.


제임스 호건
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엔지니어였고 소설가로 전업한 뒤에도 과학적 엄정성을 지키는 하드 계열의 소설을 써 왔던 제임스 호건. 최근에는 외계충격설, 에이즈 음모론, 홀로코스트 부정론 따위의 사이비 학문에 빠졌다고 한다. 

호건 본인보다는 오히려 그 부모의 일화가 더 들을만하다. 어머니가 영국으로 건너오게 된 경위에는 상당히 인상적인 일화가 전한다. 이 여성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슐레지엔 지역에 주둔했던 영국군 병사에 반하여 19세의 나이에 유럽 대륙을 걸어서 횡단, 영국까지 건너가 병사와 재회하는데 성공한다. 이들은 결국 결혼까지 하여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상대 남성은 참호전에서 가스 공격에 당한 후유증으로 30대의 나이에 죽고 만다. 남은 여성은 재혼하였는데, 그 상대가 제임스 호건의 아버지였다.


조나단 스위프트
조나단 스위프트는 '인생의 8할은 돈'이라고 단언할만큼 가난과 불운에 시달렸다. 그는 부모의 결혼조차도 "실로 생각없는 결혼이었다. 아내에게는 지참금도 없었고, 남편은 생계에 대한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갑자기 죽어버렸다."고 비판하였다.


조정래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베스트셀러 『태백산맥』의 판매량이 대략이나마 밝혀진 것은 출판사가 인세를 떼어먹었다며 저자가 소송을 건 뒤의 일이다. 조정래와 출판사 사이에 일어난 이 분쟁은 10년이 지나서야 일단락되었고, 작가는 출판사를 옮겼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게 가나출판사에서 출간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신문 기사에서 이 작품이 1100만부 넘게 팔렸다는 기사를 본 작가는 '나에게는 500만부만 팔렸다 하지 않았느냐'며 소송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 오너가 인세를 착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조지 마틴

『얼음과 불의 노래』를 쓴 조지 R. R. 마틴은 공인된 중세 유럽사 매니아로, 중세 유럽 관련 피규어를 수집하여 그 사진을 자기 홈페이지에 올리길 즐긴다. 또한 코미콘이나 월드콘 등 만화나 SF 관련 행사에도 빠지지 않기로 유명하다. (출처 : 「조지 R. R. 마틴」, 엔젤하이로 위키)


조 홀드먼
반전(反戰) SF의 대명사인 『영원한 전쟁』을 쓴 조 홀드먼. 그는 어렸을 적 『붉은 행성』과 『스타쉽 트루퍼스』를 비롯한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들을 읽으며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웠다. 군에 징집되어 베트남전에 투입되었을 때도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을 들고 갔을 정도로 하인라인의 팬이었다는 듯.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결과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려야 했으며 이러한 참전 경험으로 인해 전쟁을 몹시 혐오하게 되었다. 하인라인에 대한 애정은 버리지 않았지만 그 구조를 비튼 『영원한 전쟁』을 쓰게 된다.

오늘날에도 조 홀드먼은 끊임없이 반전 소설, 반전 시 등을 쓰고 있다...


존 르 카레와 이언 플레밍


첩보물에 관한 대가들을 꼽으라면 영국의 두 작가, 존 르 카레와 이언 플레밍을 뽑게 된다. 전자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라는 역작을, 후자는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남겼으며, 살아 생전에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성공이라는 유사함과는 별개로, 두 사람은 전혀 반대되는 삶의 길을 선택했다. 르 카레는 1960년대 초까지 정말로 '스파이'로 일했다. 그는 자신이 업무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고, 국가간의 치열한 이념 전쟁 속에서 짓밟히는 개인의 모습을 고발하는 작품들을 썼다. 르 카레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소설이 성공을 거두자 즉각 스파이 생활을 청산했다.

반면 이언 플레밍은 첩보요원의 세계를 긍정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은 멋지고, 세련되고, 확신에 가득찬 스파이들이 등장했다. 그가 창조한 주인공들은 '선'인 서방 세계를 위해 '악'인 공산권에 맞서 싸운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작가로 유명해지고 나서는 CIA의 창설 계획에 깊게 관여하며, 자신이 소설 속에서 구상했던 조직을 실제로 구현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출처 : 키호태, 「007과 2MB」)


존 폴리도리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소설인 『뱀파이어』를 쓴 존 윌리엄 폴리도리는 19세에 에딘버러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었고, 로드 바이런의 주치의로 일하기도 했다. (출처 : 「John William Polidori」, Wikipedia)

그의 대표작인 『뱀파이어』는 본래 바이런이 쓰다가 버린 글을, 폴리도리가 바이런과 결별한 후에 고쳐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드 루스벤은 상당히 새디스틱한 흡혈귀로 등장하는데, 바이런이 그 모델이라고 한다. (출처 : 「뱀파이어」, 엔젤하이로 위키)

이 소설은 당시 바이런의 명의로 출간되었는데, 이는 성공에 눈이 먼 편집자가 멋대로 이름을 고쳐버렸기 때문이다. 난감해진 바이런이 자신의 미완성 원고를 발표하기에 이르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훗날 폴리도리와 바이런과의 관계는 폴리도리가 결투를 신청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출처 : 「John William Polidori」, Wikipedia)

존 키건

영국의 군사학자 존 키건의 명저 『2차세계대전사』가 발간되었을 때 인터넷 서점의 리뷰어들과 2차대전 갤러리 사람들은 번역이 형편없다며 까댔다. 이에 번역자 류한수가 2차 대전 갤러리에 사과+해명글을 올렸고, 2쇄 때는 반드시 고치겠다는 약속을 했다. 2쇄는 한달도 되지 않아 나왔으며, (1쇄 : 1월 18일, 2쇄 : 2월 9일) 2차대전갤러리는 번역자의 대인배스러움에 탄복했다. (출처 : 류한수, 「<2차세계대전사>를 번역한 류한수입니다. 번역에 관한 비판에 답변...」, 2차세계대전갤러리)

한편, 애니북스에서 출간된 『본격 2차세계대전만화』의 뒷표지는 『2차세계대전사』의 앞표지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 작가인 굽시니스트 본인의 요청이었다고.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진 웹스터의 어머니는 마크 트웨인의 조카딸이었다. 이 인연으로 진 웹스터의 부모들은 마크 트웨인과 출판사를 공동 운영하였지만 마크 트웨인의 미숙함 등 여러가지 요인이 겹쳐 결국 4년만에 파산하고 말았다. 그 결과 마크 트웨인과의 사이는 틀어졌고, 진 웹스터의 아버지는 출판사 파산 3년만에 자살하고 말았다.

진 웹스터는 사회 개혁 운동에도 꽤나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일단 진 웹스터가 썼던 소설들 자체가 당시로서는 드문 존재였던 '여대생'의 진취적인 면을 주목한 작품들이었고, 여러 가지 사회 운동에도 직접 투신했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1900년 미국 대선 당시 사회당 당수로 대선에 출마했던 유진 뎁스 진영에서 선거 활동을 했던 전적이다. 당시는 심지어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진중권
사실 『미학 오디세이』의 구판은 진중권의 선배가 인세를 떼먹은 책이다. (휴머니스트 출판사가 아니다)


찰스 디킨스
찰스 램과 찰스 디킨스는 이름 뿐만이 아니라 성장 환경도 서로 비슷한 작가였다. 그들은 모두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성장해서는 빈민가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주로 썼다. 그러나 작품을 떠난 실생활에서의 그들은 성격이 딴판이었다. 찰스 램은 정신 분열증으로 자기 친모를 살해한 누이를 돌보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는 동안 글과 인간이 일치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디킨스는 훗날 작가로서 인정을 받아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되자 동전을 구걸하는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지팡이로 쫓아 버리곤 했으며, 소설을 쓸 때 외에는 사생아를 양산하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디킨스는 여성에 대한 불신감을 보여준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유년 시절 어머니에게 느꼈던 배신감이 주요 원인이다. 찰스 디킨스가 12살일 무렵, 하급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한데다 빛까지 얻어 결국 감옥을 가게 되었는데, 이후 장남이었던 그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몇 개월 만에 디킨스의 증조할머니가 유산을 남겨주고 죽어 디킨스의 아버지가 풀려나기는 했지만 디킨스의 어머니는 이후로도 디킨스에게 구두약 공장일을 계속하라고 요구했다. 당시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던 디킨스는 어머니의 무정한 처사에 대해 "나는 절대 잊지 않았고,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절대 잊을 수 없다."라는 말까지 남기며 이를 갈았고, 집안 경제를 아버지가 휘어잡아야 한다고 믿는 등 전반적인 여성관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W)

그런가 하면 Coutts 금융 자산의 부유한 상속자 Angela Burdett Coutts의 제안에 응해 여성들을 위한 사회 복지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의 복지 단체들은 여인들에게 거칠고 가혹한 통제만을 가하는 곳이 많았지만, Coutts와 디킨스가 경영한 이 단체는 여성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등 이 여성들이 사회에 재편입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디킨스는 직접 감옥과 구빈원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단체에 입소시킬만한 후보자들을 찾았다. 일단 적격자가 발견되면 서명란에 '당신의 벗'이라고만 싸인한 익명의 초대장을 해당 여성에게 보냈다. 그 여성이 초대를 받아들이면 디킨스가 개인적인 면접을 거쳐 그 여인의 입소 자격을 심사했다. (W)

이외에 아동 전문 병원이 경영난에 부딫히자 자선 낭독회를 열어준 적도 있다. 이 자선 공연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은 해당 병원이 병실을 늘리는 정도를 넘어 아예 건물 한 채를 더 사들이기에 충분할 정도였다.(W)

디킨스는 당시 유행했던 작가 낭독회를 취미로 삼은 작가 중에서도 낭독에 상당히 능했던 인물이다. 그는 한번의 낭독회를 위해 이틀 정도를 투여해 어조, 성량, 제스쳐 등을 연습했으며 낭독회를 마치고 나면 박수조차도 완전히 무시한 채 땀을 닦으며 강단에서 내려가곤 했다고 한다. 그는 사실 소설가로서보다는 낭독자로 더 인기가 많았고(실제로 낭독회로 인한 수입이 소설 판매 인세보다 훨씬 더 많았던 까닭에 디킨스가 농담삼아 '아예 직업을 바꿀까' 했던 적도 있다) 말년에 쓴 작품들은 낭독의 효과를 고려하는 형태로 집필되었다. (출처 :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찰스 디킨스는 실수로 동네 꼬마의 인형을 망가뜨려 미안한 마음에 새 인형을 사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꼬마의 어머니가 새 인형에 대한 답례로 무척 좋은 책이라며 책 한권을 디킨스에게 선물했는데, 그 책은 디킨스가 쓴 『데이비드 카퍼필드』였다. 


천승세
 
소설가 천승세는 신춘문예에 세 번 당선되었다. 그러나 작가가 처음 두 작품을 쓰는데 들인 시간은 모두 합해 14시간이다.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이 작가는 폴 앤더슨의 『타우 제로』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훗날 'SF란 장르 별 거 없다'라는 식의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출처 : 벌거지(=gksrud), 조이SF)


최인호
최인호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건 나이 18살의 일이다. (연세대 영문과 진학) 그는 천재 소설가로 평단의 이목을 받았지만 대중소설 쪽에 전념했고, 비평가 김현 같은 이는 '제발 돌아오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정작 최인호는 김현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쓴 비평을 받아보고는 '내 소설에 신경 끄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출처 : 카방글, 팬커그)

그는 김지하 시인을 매우 좋아하여 술을 마시고는 김지하 시인의 귀를 깨물려 했다가 한동안 김지하가 최인호를 피해다녔다는 일화도 있다. (gksrud, 도서 갤러리)


칼 세이건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 『코스모스』 등의 과학교양서로 유명하고, 『콘택트』라는 SF 소설을 쓰기도 했던 인물이다. 한편 그는 그는 미신, 의사과학, 비과학적인 요소를 매우 싫어하는 회의론자로서, 신의 존재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심지어 임종 직전에도 가족들이 신의 존재를 믿으라고 권하자 '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믿을 거 아냐!'라며 거절했다. (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 중에 이런 있다. 왕년에 아서 클라크와 함께 박람회에 갔던 칼 세이건은 공짜 영화를 보여준다는 말에 그 영화를 보러 갔는데, 알고 보니 지적 설계 홍보 영화였다. 이에 격분한 그는 영화가 끝나자 앞으로 뛰쳐나가 자신이 유명 과학자 칼 세이건임을 밝힌 후 홍보 영화의 내용을 후드려까는, 진화론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아서 클라크가 "우리가 돈 내고 영화를 본 건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로 칼 세이건을 말린 결과 관객들은 난데없는 진화론 강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는 평소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와 영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커서 아버지가 왜 자신을 멀리 하냐고 묻는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한 답장으로 무려 책 한 권 분량의 편지를 썼다.


프랭크 바움

『오즈의 마법사』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평생 장편 소설만 60편 가까이 쓰는 등 창작 활동에 열심이었지만 사실 『오즈의 마법사』를 제외하면 이 사람의 작품 중에서 내놓을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결국 『오즈의 마법사』 후속작만 끊임없이 써야 했는데, 그나마도 편집자와 독자의 강권에 의한 것이었을 뿐 자신의 뜻과는 무관했다. 심지어 이 소설은 원작자인 프랭크 바움이 죽고 난 다음에도 출판사에서 정한 정식 후계자가 후속작을 써댔고, 결국 프랭크 바움이 쓴 14권을 포함하여 총 40권으로 완결되었다. (출처 : 「라이먼 프랭크 바움」, 엔젤하이로 위키)

필립 K. 딕
오늘날 필립 K. 딕은 대표적인 SF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정작 살아 생전에는 그런 영예를 누려본 적이 없었다. 그 자신은 스스로를 먹고 살기 위해 싸구려 소설이나 쓰는 삼류 소설가로 여겼으며, 지독한 가난 속에서 신음하다 죽었다. 그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고 난 다음의 일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오스트리아 최고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던 토마스 베른하르트. 젊은 시절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고는 1년 넘도록 다른 책을 전혀 읽지 못하는 심각한 난독증에 시달렸다 한다. 다른 책들은 죄다 너무 시시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그랬다고. (출처 : gksrud, 도서 갤러리)


토마스 하디

『테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 그는 아내가 살아있을 때에는 아내와의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정작 아내가 죽고 나자 아내에게 몰인정하게 대한 것을 평생 후회하며 지냈다. 평소 그를 연모하던 39살 연하의 비서 플로렌스 덕데일과 재혼하긴 했지만 태도 자체는 여전해서 두번째 아내를 많이 애태웠고, 결혼한 이후로도 첫 아내를 그리워하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출처 : 「Thomas Hardy」, Wikipedia)


톨킨
 톨킨은 『반지의 제왕』 영화판 제작이 불가능할 거라 여겨 영화업자들에게 『반지의 제왕』 영화판의 판권을 1만 파운드라는 헐값에 넘기곤 했다. 해서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은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자기 돈을 주고 표를 사서 봐야 했다... (출처 : qui-gon, 「J. R. R. 톨킨」, 판갈)

미국에서 『반지의 제왕』 해적판이 유행하자 톨킨은 팬레터에 대한 답장마다 일일히 해적판에 대한 당부를 했고, 이로 인해 형성된 미국 팬덤들의 항의에 좌절한 해적판 출판사는 톨킨에게 인세를 지급할 것과 재고가 소진된 후에는 재판을 찍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했다. (출처 : qui-gon, 「J. R. R. 톨킨」, 판갈)

한편 문제의 해적판은 『반지의 제왕』미국판의 표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해적판이 워낙에 잘팔렸던 까닭에 정식 계약을 맺었던 발렌타인 북스에서는 상당히 급하게 책을 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원작을 읽어본 적도 없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원작을 읽을 시간도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빨리 표지를 뽑아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3권으로 분권된 표지를 일일히 그릴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거대한 그림 한 장을 그린 후 그것을 잘라서 세 장의 표지로 써야 했다. 결국 이 화가는 이미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표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물은 가히 재앙에 가까웠다. 책을 받아본 톨킨은 에뮤(새), 사자, 과일 나무가 그려진 일러스트에 경악했고, 나무 열매를 보고는 "대체 이 호박은 뭐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물론 이는 톨킨의 착각이었다) 특히 톨킨을 분노케한 것은 사자가 작품에 나오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출판사 측에서는 다음 쇄부터 표지에서 사자를 빼버렸고, 나중에는 결국 톨킨이 직접 그린 표지로 교체하였다. 한편 문제의 일러스트를 그렸던 바바라 레밍턴은 훗날 『반지의 제왕』을 읽어보고는 팬이 되어버렸고, "진작 읽었으면 내가 그런 표지는 안만들었지..."하는 말을 남겼다. 일단 문제의 표지는 이렇다. 사자는 빠진 표지. (W)

톨킨 사후 출간되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톨킨의 아들 크리스토퍼의 손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크리스토퍼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옥스퍼드 대학의 영문학자가 되었기 때문이지, 단순히 아들이라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1924년생인 크리스토퍼가 사망하고 나면 그의 작업을 계승할 만한 사람은 아직 없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1권짜리 큰 책으로 내고 싶어했다는 거야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실마릴리온』과 합쳐서 두 권으로 된 세트로 발매하고 싶어 했다던데, 그런 소망을 이뤄낸 판본은 아직까진 없다. 다만 『반지의 제왕』을 한 권으로 묶은 판본은 여러 권 발매된 바 있으니... 그 중 최초의 판본이 아래의 1968년 판본이다. 지금 보기에도 상당히 멋들어진 장정이니, 이 책을 받아본 톨킨이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 (톨킨은 1971년에 사망)



톨킨의 독실한 신앙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한다. 성공회교도였던 아내와 결혼하면서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요구했다거나 무신론자였던 친구 C.S.루이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다가 루이스가 가톨릭이 아닌 성공회로 개종한 사건은 꽤나 유명하다. 또한 당시 가톨릭에 불던 개혁의 바람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여, 성당에서 다른 신도들이 영어로 성경을 외고 대답할 때도 혼자서 우렁찬 목소리로 라틴어 문구를 외쳐 손자 시몬 톨킨을 민망케하곤 했다.

톨킨의 종교적 성향은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반영되었다. 톨킨은 조지 버나드 쇼를 비롯한 유럽 지식인들이 소련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을 당시부터도 소련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곤 했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 또한 연합군의 일원이었음에도 스탈린을 "그 피에 굶주린 늙은 살인자"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톨킨이 훗날 스탈린 정권의 부조리함을 예견하는 혜안(?)을 보였던 건 아니다. 다만 톨킨이 독실한 가톨릭이었으며 소련이 러시아 혁명기부터 반종교정책을 폈을 뿐이다. 다만 자신의 작품에 반공주의가 반영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표했다. 자신의 작품들이 러시아 혁명 이전부터 계획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는 스페인 민주공화국이 교회를 파괴하고 성직자들을 숙청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반대축의 프랑코를 지지하였고, 가톨릭교도로서 프랑코군에 가담하기도 했던 남아프리카 시인 로이 캠벨을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라며 격찬하였다. 한편 톨킨의 친구인 C.S.루이스는 로이 캠벨에 대한 풍자시까지 써가며 '가톨릭과 파시즘의 혼합물'이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나치와도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톨킨이 히틀러와 나치 당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늘어놓곤 했고, 1938년에는 『호빗』을 번역 출간하려던 독일 출판사에게 호되게 경을 치른 적도 있다.

원래 톨킨은 독일계 혈통이고, 18세기 전까지는 실제로 독일 작센 왕국 지역에서 살았던 장인가문의 후손이다. 이에 나치 독일 하에 있던 그 출판사는 톨킨에게 아리안 혈통인지를 묻는 실수를 저지른다. 나치의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혐오했던 톨킨은 이에 격분하여 계약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려다가 마음을 고쳐먹고는 이를 나무라는 서한을 보낸다.

다만 독일 출판사 쪽에 직접 보내지는 않았고, 서로 다른 어조로 쓴 편지 두 통을 영국 출판사에 보내어 그 중 한 통을 독일 측에 보내도록 했다. 현재는 한 통만이 남아 전하는데, 이 편지에서 톨킨은 본인이 영국인에 더 가까우며 독일 혈통에도 자부심을 느꼈지만 인종주의적 시도가 문학에도 영향을 끼친다면 더이상 독일 혈통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게 되리라고 점잖게 꾸짖었다. 


해리엇 비처 스토
남북전쟁이 한창일때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집필한 해리엇 비처 스토를 만난 링컨 대통령은 "오호라. 당신이 이 대전쟁을 일으킨 그 귀여운 여성이군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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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단상(2)

일기/독서 2008/12/04 15:34
문장력이 괜찮은 책의 문제점 : 읽을 때는 걸작인데 읽고 나면 평작

요즘 『파우스트』를 읽는 중에 떠올린 문구긴 하지만, 그보다는 김훈의 글에 맞을 법한 말이지 싶다. 얼마 전에 김훈에 대한 냉소적인 글을 봐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지만. (나귀「김훈의 굴욕인가...?」) 원래부터가 나는 김훈의 최근 행보에 그닥 호의적이지 못했으니까.

사실 김훈에 대한 평가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면 좀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은 그가 아직 유명세를 타기 전이었으니까. 그 때만 해도 김훈에 대한 내 입장은 '꽤 괜찮은 글을 쓰지만 글줄로 출세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작가' 정도였다. 김훈의 문체는 취향을 많이 타는 데다 자주 보면 질리기 쉬우니까. 아무리 문장력이 탁월하다지만 알맹이 없는 글만 반복해서야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기대하긴 어렵잖은가. 나만 해도 김훈이 『개』를 썼을 무렵에 그에 대한 기대를 상당 부분 거뒀으니까. (나중에 나온 『남한산성』도 사기는 샀다만 이왕의 실망감을 완전히 거둘 정도는 아니었다. 외려 '역사서를 폼나는 문장으로 적당히 문질러내 팔면 밥은 먹고 살 작가'라는 시니컬한 평만 추가하게 되었을 뿐.)

그런 사람이 갑자기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느니 노벨상 수상감이니 하는 평단의 격찬을 듣게 되니 놀랄 밖에. 요새 김훈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드는 걸 보면 좋아했던 작가의 몰락을 슬퍼해야 하는지 원래 그가 받았어야 했을 위치로 돌아온 것에 안도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원래 그 정도'라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음이야 편하겠는데 글쎄... 소설로는 『칼의 노래』, 산문으로는 『자전거 여행』 이후로 특출난 글솜씨를 보여주지 못하는 걸 보고 나귀 님의 말씀대로 급추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아래는 예전에 썼던 김훈 관련 글들.

『개』(클릭)



김훈 단상(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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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접속하고 보니 리퍼러에 똑같은 주소가 도배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확인해 보니 네이버의 '이영도 공식 출판 카페'였다. 예전에 썼던 황금가지 이야기를 누군가가 해당 카페에 옮겨놨던 모양. 링크를 타고 가 보니 글 쓴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민망해할만한 반응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었다. 글쎄... 사실 그 반응 자체는 예상했던 바다. 장르문학계의 큰손인 황금가지에 대해 이래저래 안좋은 소리들을 써놨으니 그 팬들 입장에서 좋은 말이 나올 턱이 있나. 하지만 '왜 이제서야?'

사실 저 글, 인터넷에 공개된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최초로 작성된게 5월 13일이니 단순히 기간만 따져봐도 반년이나 지난 글이다. 내 블로그에만 꼭꼭 숨겨져 있었던 것도 아니고 DCinside의 도서 갤러리와 판타지 갤러리, 팬커그, 마이글 등에 동시 개재되었던 글이다. 아니, 다른건 제쳐두고 한 때 포털사이트에서 황금가지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내 글이 튀어나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출판사 팬이라는 사람들이 이제야 확인했다니 내 참... 무려 『드래곤 라자』 양장본과의 관계성을 염려하는 분까지 계시던데, 작성된 날짜만 봐도 그런 말은 못하셨을 게다.

말이 나온김에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황금가지라는 출판사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번역문학에 있어서는 이런저런 실책들을 범해왔을지언정 창작장르문학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최고의 선택을 보여줘 왔으니까. 비단 간판 스타인 이영도 뿐만 아니라 하더라도, 황금가지에서 책을 낸 작가 중 주목할 만한 작가들은 수두룩하다. 김민영, 이수영, 거울 필진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이영도보다도 이런 작가들의 책을 내준 것이야말로 황금가지의 가장 큰 공로라 할만 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다.)

게다가 딴건 다 제쳐두더라도 《황금드래곤 문학상》만 보더라도 황금가지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출판사다. 여러가지 못마땅한 점도 많긴 하지만 SF 쪽의 시공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괜찮은 출판사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건 문제의 그 글에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인데, 혹자는 "황금가지에 뭔가 감정이 있는듯이 잘못만을 어떻게든 끌어내려는 모습"이라 하니 이거야 원...

그러나 김준혁 편집장님의 반응에 대해서는 조금 감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좀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대인배라고 불러줄만한 답변이다. 판평대를 주최할 때 황금가지의 후원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셨을 법도 하련만. 특히 『반지의 제왕』에 대해 황금가지 쪽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딴에 보면 나로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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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이 휴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이 휴간이지 사실상 폐간이라 다름없는 휴간이라고 한다. 원체 《판타스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나도 그 소식에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놀랐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판타스틱》은 한국 땅에서 제대로 출간될 수 있는 것이 의심스러운 잡지였고, 출판계의 갈수록 심해져가는 불황이나 사정없이 올라가는 제작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지금까지 버텨준 것이나마 다행스러웠던 잡지였으니까. '역시나...'라고 반응하게 만드는 사건을, 놀랐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곤 해도 '현존하는 유일한 장르문학 전문 잡지'의 휴간이라는 건 역시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듯 하다. 요즘 들어 가는 곳곳마다 《판타스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니까. 하도 말들이 오고 가니 나 혼자서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민망해질 지경이다. 그렇다고 직접 읽어본 적도 없는 내가 이제 와서 짐짓 《판타스틱》의 휴간을 슬퍼하는 글을 올리는 것도 퍽 우스운 일이리라.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부터 《판타스틱》에 그렇게 우호적이지는 못했던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안티였다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좀 어정쩡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장르 문학 팬덤을 상대로 오프라인 잡지가 그렇게 성공을 거둘 것 같지 않았던 것인데... 워터가이드라고 하는 걸출한 사례를 경험했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장르 문학 팬덤에게는 사실 《판타스틱》같은 오프라인 잡지보다는 웹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활동할 만한 오프라인 공간이 마땅찮았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팬덤은 어쨌든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해왔고 장르문학의 성과도 창작물을 제외하면 대부분 온라인 중심으로 축적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오프라인 잡지의 창간이라...? 경탄할 만한 사건이긴 하지만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싶었다. 팬덤의 적은 숫자 이전에 그것부터가 걱정되었던 거다.

이 글을 올리자마자 들려오는 "12월 호부터 재간".

일시적 헤프닝에 그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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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4일, PILZAⅡ님의 블로그(Phantasmagoria)에서 있었던 '댓글 빨리 달기 이벤트'(링크)에 당첨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필자투님에 댓글을 자주 단다거나 하는 열성팬은 아니고, RSS리더에 등록해놓은 덕에 어쩌다 우연히 남들보다 일찍 이벤트에 응모할 수 있었던 것 뿐인데 다른 분들을 제치고 상을 받자니 대단히 황송하더군요. 사실 길에서 천원짜리 한 번 주워본 적 없던 제가 이벤트에 당첨되고 보니(거기다 배상이 무려 따끈따끈한 신간 도서입니다!) 기분도 굉장히 좋더군요.

어찌되었건 그 부상(!)이 어제 도착을 했습니다. 부상은 필자투님을 포함하여 총 11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SF 단편집, 『앱솔루트 바디』.


음,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사진만 올리고 말자니 역시 좀 섭섭하군요. 역시 실물 사진이 필요하겠죠?


 사실 소포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었습니다. 막연히 인터넷 서점 내지 출판사를 통해 책이 오겠거니 하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 버릇해 그런 탓인지...) '보내는 사람'에 필자투님의 주소와 실명이 그대로 적혀 있는걸 보고서야 정말로 개인적인 이벤트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가 11명이나 되는데 저자 증정본이 그렇게 여유가 있었을 것 같진 않은데, 이벤트 자체는 가볍게 벌이셨어도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딱 책 크기만한 소포에, 서류봉투에 넣어져서 온 소포였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봉투 너머로도 선하게 '뾱뾱이'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넵, 서류 봉투 포장을 벗고서 등장한 『앱솔루트 바디』(와 뾱뾱이)

뾱뾱이를 벗은 모습입니다. 봉투 상태로도 대략 짐작하긴 했는데 책이 생각보다 많이 두껍더군요. 분량은 400페이지인데, 체감하기로는 500페이지쯤은 거뜬해보일 정도로...


사실 어제 밤 늦게야 경비실에서 소포를 찾아온 까닭에 아직 작품들은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면 주말이니까, 곧 있으면 자세한 사항에 대해 올릴 수 있겠지요. (사실 제가 이렇게 말을 해놓고서 제대로 서평을 올린 적이 퍽 드물긴 합니다만...)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은 선물을 주신 필자투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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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할머니께서 용돈을 주신 김에, 어제 새로 책을 구입했습니다. 절반은 새 책이고 절반은 알라딘 중고샵에서 산 책이지요. 나름 괜찮은 값에 책을 샀다 생각하고 뿌듯한 심정으로 책을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구입한 헌책 중에서, 알라딘에서 들었던 것과는 그 상태가 '상당히' 다른 책들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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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두 권의 책입니다.)

문학비평 용어사전』(알라딘 주장: 최상, 01년 개정판) 5,630원
문학이론서를 보면서 전문 용어 사전이 있으면 좋겠다고 입맛 다시던 차에 마침 좋은 책이 올라왔다며 희희낙락하며 구입했었지요.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알라딘 중고샵에서 산 책에는 예외 없이 붙어 있는 그 스티커를 떼고 보니 정가가 9,000원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더군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해보니 99년도 신장판이었던 겁니다. 말이 신장판이지 76년 초판 이후 개정 없이 96년까지 16쇄나 뽑아내던 것을 그대로 낸 것인데, 아무리 가격이 싸다곤 해도 이게 과연 살만한 물건인가 싶더군요. 01년 개정판이라면 모를까...

시학』(알라딘 주장: 최상, 99년 판본) 4,080원
천병희 선생의 책에 대해 찾다 구입하게 된 책이었지요. 기왕에도 고려대출판부에서 나온 것으로 한 권 갖고 있긴 했지만 영문판 중역이었던지라, 원역으로 한 권 더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더군요. 문제는... '새 책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최상'치고는 어째 책이 좀 많이 낡았거니와...(보정을 해서 사진에서는 그리 돋보이지 않지만 책 아래 부분은 꽤 때가 많이 끼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필기와 밑줄 긋기까지 되어 있더군요. 거기에 맨 뒷장에는 전 소유자의 것으로 보이는 사인까지... 연필로 되어 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습니다만.

『문학비평 용어사전』 때 당한게 있기도 하니까 혹시나 해서 스티커를 떼어보니 95년도 판본에, 정가 6천원이더군요.
99년도 판본 신간은 할인가로 6,800원에 팔고 있던데 말입니다. 미리 알았으면 차라리 신간을 구입하고 말았을 턴데 말이죠. 『문학비평 용어사전』은 그나마 구판에 걸맞게 가격이라도 싸니까 이해라도 해보려 노력할 여지가 있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더군요.

인터넷 서점에서 생각과는 다른 책이 오면 그저 반품해버리면 그만이긴 하겠지요. 제가 평소 인터넷 서점에서 산 책 상태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해오던 것도 그것이고요. 하지만 뭐랄까... 이건 단순히 책 상태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서 일종의 '신뢰' 문제잖아요? 요즘에는 개정판이 개정판 같지 않은 경우도 워낙에 많다곤 하지만, 구판 도서의 헌책값을 신판 도서의 정가에 맞추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저 두 권은 내일까지 고민해봤다가, 딱히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교환 신청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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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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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하엘 엔데
    나는 무심코 그를 이탈리아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미하엘 엔데는 독일인이다. ...그런데 미하엘 엔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2. 에드거 엘런 포
    나는 『우울과 몽상』(에드거 엘런 포 전집)을 오랫동안 독일문학서가에 보관해왔다. 하지만 얼마 전에 서가를 정리하면서 확인해보니 『우울과 몽상』의 ISBN 부가번호는 03840이었다. (840은 영미문학의 부호다.)
     
  3. 조지 오웰
    나는 막연히 그가 스페인인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카탈로니아 찬가』가 스페인 내전에 대한 르포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조지 오웰은 영국인이다. (스페인 내전은 외국인 의용병으로서 참전한 것이었다.)
     
  4. 폴 오스터
    나는 그를 프랑스인으로 알고 있었다. '폴'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인들이 애용하는 이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착각은 장 '폴' 사르트르 때문에 생긴 듯 하다) 도갤에서 추천도서목록 통계를 낼 때, 나는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당연히(!) 프랑스문학으로 분류하고 말았다. ...무지하게 까여야 했던 것은 당연지사.


지금 생각하면 그저 식은땀이 흐르는 실수들.

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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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짤방이 모든 걸 설명해주리라 믿습니다. 아아, 컴퓨터 할부 대금을 넣고 나니 한번의 지름에 사라지는 공익 월급이여...

  1. 중고라지만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세트가 저 가격에 올라온걸 보니 어쩔 수 없더군요. 그래도 중고만 사는건 어째 좀 미안하지 싶어 내친김에 새 책 두 권도 같이 넣었습니다.
     
  2.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스토리 구조만큼은 원작을 충실하게 따랐다길래 정말 그랬을까 하면서 미심쩍어하며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드라큘라 백작이 지나치게 느끼하지 않나 싶더군요. 그래도 『헬싱』같은 작품에서 그 이미지가 반복되는걸 보면 제법 성공적이었던 모양이기도 한데...
     
  3. 종이팩 한 장에 100원이란 가격을 매긴걸 두고 비싸다 해야 할지 싸다 해야 할지 참 고민됩니다.
     
  4. 이번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세트를 사기 전에 세 권을 이미 샀었습니다. 나머지를 따로 사서 채우는 것보다 차라리 전집으로 사는게 더 싸서 이렇게 사긴 했는데, 중복되는 책은 다시 방출해야지요. 관심 있는 분이 댓글 달아주시면 착불로 부쳐드리렵니다. (아마도 우체국일 듯) 내다 팔 권은 다음과 같습니다.
     
    - 3권 : 성장과 눈뜸
    - 4권 : 환상과 기상(구판)
    - 6권 : 비틀기와 뒤집기
     
  5. 정영목 씨는 SF팬덤 사이에서 워낙 악평이 자자한 양반이라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었습니다만, 『카탈로니아 찬가』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겠더군요. 딱히 다른 판본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니...
     
  6. 『끝없는 이야기』번역에 얽힌 뒷이야기를 듣고서는 역자 차경아 씨에게 굉장한 호감을 갖고 있었더랬습니다. 『물의 요정 운디네』의 경우는 오직 차경아 씨가 번역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입했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얼마전에 우연찮게 차경아 씨의 번역으로 『낭만동화집』이라는 환상 동화 앤솔러지가 출시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산 책에 수록되어있던 작품이 적잖은 게 좀 속쓰리긴 해도, 굉장히 좋은 앤솔러지다 싶더군요. 마침 알라딘 중고샵에 올라와 있는 것을 운좋게 건질 수 있었고요.
Posted by 아프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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