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출판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08 2009년에 읽은 책
  2. 2009/12/05 『끝없는 이야기』 (1)
  3. 2009/10/27 『거장과 마르가리타』 번역본에 대한 잡설 (4)
...에 이은 2009년에 읽은 책. 만화나 과제 도서는 제외했다.

사실 '2009년에 읽은 책'을 말하기엔 조금 이른 때이기야 하다. 내 독서 패턴 상 월 말쯤 되면 이왕의 목록에 못해도 7,8권쯤은 더 추가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한해 독서 현황을 정리한다는게 하루 이틀로 될 일도 아니고 하니 일단 공개부터 해서 기정사실화한 다음 차차 수정해나갈 생각이다.

예년과는 달리 각 작품에 대한 별도의 코멘트는 일일히 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기왕에 이 블로그나 거울 웹진, 북시 위키 등에 썼던 해당 작품 관련 글들을 링크하고자 하니 해당 작품에 대한 내 코멘트가 궁금한 분들은 그 링크를 찾아보면 되겠다. 제목에 링크된 것은 블로그에 썼던 '서평'이고, 그 뒤에 괄호쳐진 '(북시)', '(거울)' 등의 링크들은 해당 공간에 썼던 글들을 지칭한다. '(잡글)'은 그 작품에 대해 이 블로그에 썼던 잡설을 이야기한다. 아예 따로 그 작품에 대해서 언급한 경우만 링크했고, '근황' 류의 글에 넣었던 코멘트는 링크하지 않았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경우처럼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가도 그 성과를 북시 위키 등으로 집약시킨 경우에는 '최종 버전'만을 소개했다. 

'올해의 베스트 5'는 현재로서는 다음과 같다. 제시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머나먼 바닷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6년)
상세보기
로캐넌의 세계(환상문학전집 5)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5년)
상세보기
어둠의 속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엘리자베스 문 (북스피어, 2007년)
상세보기
거장과 마르가리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미하일 불가코프 (문학과지성사, 2008년)
상세보기
유년기의 끝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아서 클라크 (시공사, 2002년)
상세보기







미분류
문학

문학총류

앤솔러지

한국문학

영미문학

독일문학

프랑스문학

러시아문학

더보기

철학
  • 리쩌허우『중국고대사상사론』정병석, 한길사
  • 정도원 『유학과의 짧은 만남』문사철
사회과학

경제학

정치학

교육학

법학

기타 사회과학

'도서 > 통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년에 읽은 책  (0) 2009/12/08
끝까지 다 못 본 소설들...  (7) 2009/01/22
2008년에 읽은 책  (0) 2008/12/24
7월 하반기를 위한 책  (6) 2008/07/22
Posted by 아프락사스.
TAG 《미래경》, 《뱀파이어 연대기》, 《서부 해안 연대기》, 《아발론 연대기》, 《어스시》, 《위험한 경제학》, 《타임 패트롤》, 《판타스틱》, 《퍼언 연대기》, 《헤인 연대기》, 『갈라하드와 어부왕』, 『갈릴레오의 아이들』, 『개혁의 덫』, 『거장과 마르가리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경계선 성격장애』, 『공기 위를 걷는 사람들』, 『광장』, 『국가의 역할』, 『그리고 죽음』, 『그림자 잭』, 『기형도 전집』, 『낯선 조류』, 『누군가를 만났어』, 『뉴라이트 사용후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 『독서의 역사』, 『동화가 재미있는 이유』, 『드래곤의 비상』, 『드래곤의 탐색』, 『로캐넌의 세계』, 『만들어진 현실』, 『머나먼 바닷가』, 『민들레 와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바다의 별』, 『바다의 전설』, 『반지의 제왕』, 『백색 드래곤』, 『뱀파이어 레스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별을 쫓는 자』, 『보이지 않는 도시들』, 『부동산 계급사회』, 『부동산의 비밀』, 『빼앗긴 자들』, 『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 『서재 결혼 시키기』, 『성배의 기사 퍼시발』, 『성찰하는 진보』,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 『시간 여행자의 아내』,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아누비스의 문』, 『아더 왕의 죽음』,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아투안의 무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어둠의 속도』, 『어스시의 마법사』,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오만과 편견』,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요정들의 사랑』, 『유년기의 끝』, 『유배 행성』, 『유학과의 짧은 만남』, 『이런 꿈을 보았다』, 『잎 속의 검은 잎』,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 『절망의 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제5도살장』,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중국고대사상사론』, 『지방은 식민지다!』, 『최고의 변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타워』, 『테하누』, 『파우스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하이브리드시대의 문학』, 『학벌사회』,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한국의 책쟁이들』, 『환영의 도시』, 강준만, 개마고원, 경향신문, 고호관, 괴테, 그라닌, 기형도, 김민혜, 김상봉, 김상훈, 김서정, 김석희, 김성곤, 김안나, 김이환, 김인순, 김정란, 김혜란, 김혜림, 노블레스클럽, 니페네거, 더난출판, 더쇼비츠, 돌베개, , 라이스, 르귄, 르카레, 리쩌허우, 마르칼, 망구엘, 매직하우스, 맥카프리, , 문사철, 문예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민음사, 박경수, 박상훈, 박웅희, 박형규, 배명훈, 뱅크스, 변용란, 보네거트, 부키, 북스피어, 불가코프, 브래드버리, 살림, 삼인, 샘터, 서울대학교, 선대인, 세종서적, 셰퍼, 손낙구, 스미스, 시공사, 시작, 씨앗을뿌리는사람, 아이필드, 앤더슨, 여울, 열린책들, 오멜라스, 오스틴, 웅진, 웅진지식하우스, 워커, 위즈덤하우스, 유은경, 윤지관, 이규현, 이동현, 이미애, 이미지박스, 이상원, 이선주, 이수현, 이인웅, 이정인, 이지연, 이충호, 이현경, 이형식, 임종업, 장하준, 전승희, 정도원, 정명진, 정병석, 정소연, 정영목, 정진영, 정창, 정희준, 젤라즈니, 조국, 조금석, 조성호, 조애리, 주니어파랑새, 지만지, 지만지고전천줄, 지호, , 책세상, 청림출판, 최인자, 최인훈, 최장집, 최준영, 칼비노, 크레이스, 클라크, 톨킨, 파워스, 판타스틱, 패디먼, 페이퍼하우스, 학지사, 한길사, 한상범, 한윤형, 해냄, 해토, 행복한책읽기, 향연, 홍기빈, 홍대화, 황금가지, 황매, 황소자리, 후마니타스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49 관련글 쓰기

한 작품만을 읽고서 장르 전체를 판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드물다. 그러나 한 작품을 더 읽음으로서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장르에 대한 견해 자체가 바뀌기도 마련이다. 시어도어 스터전의 말을 빌린다면 "90%의 쓰레기"가 아닌 작품을 읽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당연히 내게도 그러한 예로 들 만한 작품이 여러 개 있다. 『어스시의 마법사』, 「오딘의 비애」,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등.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역시 『끝없는 이야기』를 능가하는 충격을 주었던 작품은 없다.

내가 이계 진입이라 하는 소재 - 혹은 하위 장르 - 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물론 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하면서부터였지만, 그 소재에 대해 딱히 좋은 감정을 가져본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한창 판타지를 읽어 내리던 시절 주변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이계진입물' 중에는 쓸만한 소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창작되던 '이계진입물'들을 싸잡아 '독자들이 대리만족할만한 요소들을 좀 더 첨가시킨 먼치킨물' 이상으로 보지 않았고, '이계 진입'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질 못했다. 『끝없는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끝없는 이야기』의 도입부는 흔한 '이계진입물'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우연히' "끝없는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게 된 바스티안 발자타르 북스라는 소년이 책속 세계의 위기를 해결할 영웅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연 책 속으로 들어간 소년은 세계를 구하고, 그 대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는다. 여기서 '무엇이든'이라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다. 현실 세계에서는 뚱뚱하고 작고 힘없는 소년인 바스티안도 이 세계에서는 잘생기고 훤칠하고 힘센 외모를 가질 수 있고, 바스티안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그 세계의 현실이 된다. 그 뒤 바스티안이 벌이는 활약상. 여기까지가 소설의 전반부이며 사실 작품 내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엔데의 진면목은 오히려 그 뒷부분에서 발휘된다.

바스티안이 갖게 된 힘은 물론 강력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도 뒤따른다. 바스티안이 현실화한 이야기들은 서로 뒤엉켜서 예상치도 못했던 결과를 낳고, 그 후폭풍은 바스티안에게 몰려온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대가는 바스티안이 권능을 발휘할수록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된다는데 있다. 자잘한 기억부터 시작해서 바스티안이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종내에는 자신의 이름까지. 자기 자신을 잃고 그 환상 세계에 함몰되는 것이야말로 권능의 가장 큰 대가이다. 그 뒤로는 바스티안이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현실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진다. 여기에는 화려한 재미가 없다. 그러나 여운을 길게 남긴다.

이러한 서사가 남기는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환상의 나라는 잠시의 피난처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영원히 안주할 공간은 아니다. 현실의 인간은 현실 속에서 현실과 부딪쳐야 한다. 이토록 정교하고도 매력적인 환상세계를 창조한 작품이 말하는 게 결국은 '현실로 돌아가라'라는 거라니. 현실과 환상세계와의 접점을 다룬 작품에서 충분히 나올 만한, 어쩌면 장르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 아닐까. 소위 '이고깽'이라 하는 장르에 속하는 작품들과는 명백히 구분될 만한 작품 아닌가 말이다. 내가 최근 들어 '장르나 소재 자체보다는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 때마다 늘 이 작품을 거론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읽었을 때까지의 감상이었고, 몇 해 뒤에 이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을 때는 약간 달라졌다. 여태의 감상 자체가 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의 새로운 면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바스티안 발자타르 북스야말로 내가 여태 접한 작품 중 가장 부러워해 마땅한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거다.

이 작품 내에서 바스티안이 들어가는 환상의 세계는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 속의 세계이다. 바스티안이 이 책을 덮었을 때 - 모험에서 돌아왔을 때 - 흐른 시간은 고작해야 반나절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바스티안은 창고에 숨어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바스티안이 경험한 독서를 '고작'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누가 바스티안만큼이나 '책 속에 빠져들어' 봤겠는가. 독자라면 누구나 바스티안처럼 되길 바라고, 작가라면 누구나 바스티안 같은 독자를 가져보길 바라지 않을까. 그러니 바스티안을 그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P.S.

『끝없는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렇게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었다. 당시 내가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이 '평범한 이고깽물'과는 뭔가 다르기야 하다는 것 뿐이었고, 결국에는 '이고깽물'을 혹평할 만한 근거로 쓰일 만한 작품을 알게 되었다는 선에서 만족했을 뿐이었다. 내가 이 작품을 이처럼 좋아하게 된건 그로부터 적어도 2년 뒤다. 그 때서야 나는 『끝없는 이야기』를 읽어낼 여유를 갖췄던 셈이다.

P.S.2

이 작품을 읽은 뒤에 엔데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 했던 적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어렸을 때 이미 읽었던 『모모』였고. 워터가이드에서 당시 절판 중이었던 『거울 속의 거울』인가가를 당시 대학 강사 생활하던 모님이 제본하여 뿌렸을 때(물론 복사비는 내야 했지만) 나 역시 받으려 했지만 서울 사는 사람 한정이어서 결국 수령해지 못했던 적이 있다. 내 대신 책을 받아주셨다가 결국 책 두 권을 떠안게 된 모 님께는 늘 죄송하게 생각했었는데, 작년엔가 수년 만에 뵈었을 때 여쭤보니 다핻히도 이미 선물용으로 쓰셨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자유의 감옥』이라는 중단편집을 사서 읽어봤지만 『끝없는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로. 지금 읽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감상 같아서는... 이 외에 『짐 크누프』를 비롯한 다른 책들은 소개문만 읽어봐도 아동 서적이라는 느낌이 너무나 짙게 풍겨나오는지라 차마 건드리고 싶지 않다. 이러니 엔데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와 『모모』의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P.S.3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끝없는 이야기』를 읽게 된 계기 자체도 작품 자체의 가치와는 무관했다. 이름 자체는 워터가이드에 올라왔던 '벌거지 팬터지 목록 2.0'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 이름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된 건 누군가가 워터가이드에 『끝없는 이야기』 번역본 선택에 대해 올렸던 질문글을 본 뒤였다. 당시 어느 답변자가 저자인 엔데와 초역자인 차경아 사이에서의 인연에 대해 거론하며 차경아역을 추천했었는데, 그 사연이라는게 퍽 인상깊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미담이 나로 하여금 엔데라는 작가의 팬으로 만든 셈이다. 그러고보면 '가십거리'의 기능이라는 것도 꼭 그렇게 무시할만한 건 아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거의 처음으로 '외국 판타지'를 읽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번역본'과 '가십거리'에 대하여 그리 집착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리플로 장문의 썰을 풀어내던 그이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내가 '판작안'과 '작가들에 대한 가십거리'를, 그리고 '북시 위키'를 만들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원흉(?)이랄까. 하지만 작품 자체는 정말 좋았고, 탈도 많기야 했지만 '판작안' 등의 기획도 결국 내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딱히 그에게 악감정은 없다. 아니, 악감정 가지는 쪽이 이상한 거던가.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타스틱》  (0) 2010/03/03
『끝없는 이야기』  (1) 2009/12/05
『뱀파이어 레스타』  (4) 2009/12/01
「빈 집」  (0) 2009/12/01
Posted by 아프락사스.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82 관련글 쓰기

으레 '2009년 10월 근황'에 넣으려다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밖에 뺀 이야기-.

홍대화의 열린책들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끼워넣었다. 번역서 본문을 비교하는 대목부터 읽으면 된다.




내가 가장 먼저 접한 『거장과 마르가리타』 판본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박형규 씨의 번역본이었다. 이 판본에 대해서는 읽기 전부터도 여러 곳에서 많이 들었다. 역자 박형규 씨는 과거 1982년부터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번역하여 출간했던 사람이다 운운. 이 번역본이 여러 출판사를 거쳐 1992년에 삼성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을 마지막으로 거의 14년간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새 번역본이 없다가 2005년에 러시아에서 나온 드라마가 그야말로 대박을 치는 바람에 이 드라마가 한국에 수입되는 시점에 즈음하여 문예출판사에서 재출간되게 되었다 운운. 거개는 벌거지님을 통해 접했던 정보들이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정보 중에는 이 번역본이 사실은 저작권 관련 사항조차 불명확한 일어 중역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이야기 관련해서는 내 기억이 불확실하니 넘기도록 하고... 중역본들이 대개 그렇듯 매끄럽게 읽히는데 치중한 번역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이 판본으로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게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불가코프 전공자가 작업한 다른 번역본들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확실히 그렇게 충실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번역본이다. 2권 말미에 들어간 벌거지님의 서평은 꽤 훌륭했지만 번역에 들어간 정성 자체가 이리 부실해서야.

그 뒤에 접한 판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나온 김혜란의 번역본, 그리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홍대화의 번역본. 뒤의 두 판본은 이전에 나온 문예출판사 판에 비하면 정말 정성스럽게 제작된 판본이라 그저 감탄하면서 볼 뿐이다. 요 며칠간 나도 해외의 불가코프 팬 사이트를 뒤지며 나름 공부를 하긴 했다지만 이 두 사람의 번역서에 달린 주석들은 상당 부분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것도 작품 이해에는 거의 필수적인 주석들이어서, 문예출판사 판만 봤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이를테면 2장에서 예슈아 하-노츠리가 유다 이스카리옷과의 인연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박형규 역(45~46p, 1권)  김혜란 역(44~45p)  홍대화(49~50p, 上권)
  "그럼," 총독이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가리옷 사람 유다를 아느냐? 그와 얘기한 적이 있다면, 케사르에 대하여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있습니다." 죄수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저께 저녁 저는 성전 근처 가리옷 마을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는 선량한 사람인가?" 빌라도가 묘한 눈빛을 띄고 물었다.
 "매우 선량하며,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죄수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저의 사상에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으며 즐거이 저를 환영했습니다."
 "촛불까지 켜고……." 빌라도가 이를 악문 채로 죄수에게 말했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예." 예슈아는 총독이 그토록 소상한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데 놀라면서 말했다." 그는 저에게 정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단히 관심이 많더군요."
  "그래서 너는 무슨 말을 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대답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목소리에는 체념한 듯한 기분이 나타났다. 
  "그럼," 그가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너는 키리아트에서 온 유다라는 자를 알고 있느냐, 그리고 그자에게, 그러니까 만일 말을 했다면, 카이사르에 대한 무슨 말인가를 했느냐?"
 "그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엊그제 저녁 성전 옆에서 키리아트 시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도시 남쪽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저를 초대하여 대접해주었습니다……."
 "그자도 선량한 사람이었겠지?"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에 불꽃이 타오르듯이  이글거렸다.
 "무척 선량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죄수가 대답했다. "그는 제 생각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고, 매우 정성스럽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작은 불꽃들도 켜두었고……." 빌라도는 거의 입을 벌리지 않고 죄수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두 눈이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렇습니다." 예슈아는 총독이 그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는 것에 다소 놀라며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국가 권력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텐가?" 빌라도의 어조에는 이미 절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대답해라.」 그는 말했다. 「너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38라는 자를 아느냐? 말한 적이 있다면, 네가 카이사르에 대해 한 말은 참으로 어떠한 것이냐?」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꺼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저께 저녁 나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라고 하는 한 젊은이를 성전 옆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도시 아래쪽에 있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했지요…….」
 「그는 선한 사람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악마 같은 불꽃이 튀었다.
 「아주 선량하고 상냥한 사람이지요.」 죄수는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나의 생각에 큰 관심을 보이고, 나를 아주 정성스럽게 맞이했습니다…….」
 「등불을 밝혔겠지…….」39 빌라도는 이를 악물고 죄수의 톤에 맞추어 말했다. 이때 그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렇습니다.」 총독이 그것을 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면서 예슈아가 말을 이었다. 「나에게 국가 권력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말해 달라고 했어요 그는 그 문제에 지극한 관심을 보였지요.」
 「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혹은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말투에는 기대감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촛불', 혹은 '불꽃'에 대한 묘사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다소 생뚱맞게 삽입된 부분이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총독이 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서 불을 켰다는 사실을 짐작한단 말인가? 별다른 주석을 제시하지 않는 박형규 역에서는 이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만, 김혜란 역과 홍대화 역에서는 미주와 각주를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유대의 율법은 누군가 종교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유혹'의 죄로 고소된 경우, 두 증인으로 하여금 벽 뒤에서 숨어 지켜보게 하고, 그 옆방에 피고인을 들어가게 하여, 피고인이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증인들이 그의 말을 듣게 했다. 그리고 이 때 피고인 곁에는 촛불 두 개를 켜두어, 증인들이 피고인의 얼굴을 분명히 알아보도록 했다. (김혜란, 619p)

로마법에 따르면 숨겨 놓은 증인들이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등불을 밝히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홍대화, 상권 50p)

유다가 예수를 초대하면서 촛불을 켰다는 사실은 결국 이 때 이미 유다가 예슈아 하-노츠리(곧 예수)를 팔아넘기고자 했다는 뜻이고, 본디오 빌라도가 이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는 건 그러한 사실을 본디오 빌라도가 알아차렸다는 것을 뜻한다. 주석이 없는 다른 판본에서는, 본인이 이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지 않은 이상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대목이다.

기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저자 자신이 살았던 당대, 스탈린 정권 치하의 러시아에 대한 풍자 소설일 뿐만 아니라 성경, 중세 파우스트 전설 등 숱한 배경지식들이 녹아난 소설이기도 하다. 결국 작품들이 품고 있는 맥락들을 집어내지 못한다면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충실한 주석이 곁들여진 번역본들의 가치가 단연 높을 수밖에 없다.

남은 문제라면 기왕에 나온 두 주석본 중 어떤 책의 주석이 더 탁월하느냐의 여부가 되겠는데... 사실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인용한 구절에서는 김혜란 역의 주석이 훨씬 상세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홍대화 역에서 훨씬 상세하거나, 아예 홍대화 역에만 실린 주석도 적지 않다. 정말 재미있는 건, 두 번역본 모두 같은 원서와 같은 주석서를 참고하여 주석을 달았다는 점이다. (1990년에 출간된 불가코프 전집과 2007년에 출간된 벨로브롭체바의 주석서) 일단 쉽게 확인 가능한 차이라면 문학과지성사판은 주석을 미주로 달아 죄다 책 뒤로 밀어냈고, 열린책들판은 각주로 달아 그 때 그 때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는 점 정도.

물론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러시아문학 특유의 독자적인(?) 인명 표기는 좀 더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고...

결국 문예출판사의 번역본을 까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 번역본도 나름 번역사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일단 2006년에 이 번역본이 재간되고 나서 최근 들어 갑자기 문학과지성사판이니 열린책들판이니 하는게 번역되기 시작했고, 모 출판사에도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는 하니 말이다. 번역 자체의 수준이야 어떻든 불가코프 번역 붐(?)을 일으킨 공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할까? 그렇다곤 해도 문예출판사의 번역본만 보겠다고 하면 썩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또,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모 출판사에도 2007년에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 들었다. 언제 나올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번역자 분이 소설가로서는 내 나름 주목하는 분이기도 해서 제법 궁금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원고가 2007년에 넘어갔다 하니 문학과지성사나 열린책들에서 나온 원고보다는 주석이 상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뭐 모 출판사에서 현직 교수인 이상섭 씨가 번역한 『아서 왕의 죽음』조차 2005년에 원고를 받아놓고서는 올해 말에 낸다니 만다니 하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과연 언제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Posted by 아프락사스.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61 관련글 쓰기